오사카 덴가차야 <사카토케>
내 일본어는 오래된 공책 같다. 고등학교 제2외국어 시간에 적어둔 문장들이 연필심처럼 옅게 남아 있을 뿐, 지금 쓰는 단어라곤 인사와 가격 확인, 그리고 ‘혼자(ひとり)’가 전부다. 조카가 도쿄에 산다는 사실은 한때 훌륭한 동기부여였지만, 서로 거의 만나지 않게 되자 그 의지도 바람 빠진 풍선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예습’으로 시작한다. 여행 한 달 전이면 구글 지도에 가고 싶은 곳들을 별표로 빽빽이 찍고, 별표마다 이유와 대표 메뉴, 주문법을 메모한다. 일본어 메뉴판이 필기체로 흘러 써져 파파고도 포기하는 집이라면 더더욱 입구에서 문을 여는 순간까지 주문 시뮬레이션을 반복한다. 누구는 피곤하게 여행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피곤함을 대가로 배움을 얻는 편을 택한다. 내 여행은 그 피곤함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비행기는 간사이 공항에 나를 내려놓고, 숙소는 덴가차야 역 근처에 나를 들여보냈다. 시계는 밤 여덟 시를 조금 넘겼다. 샤워로 졸음을 지울까 하다,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여행자 모드’를 켜기로 했다. 그날은 한신 타이거스가 센트럴리그 파이널 스테이지 2차전을 치르는 날이었다. 주점 안 텔레비전 아래에서 환호와 탄식이 물결처럼 번갈아 밀려왔다.
덴가차야 역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 간판의 두 글자 <酒解(사카토케)>가 저녁 바람을 타고 북소리처럼 가슴에 들어앉는다. 문자 그대로라면 ‘술을 풀다, 술을 해제하다’. 교토 우메노미야 대사의 ‘사카토케노카미(酒解神)’—술 빚기의 신—에서 가져왔을 법한 그 뿌리는, 굳은 하루를 술과 음식으로 ‘풀어낸다’는 뜻을 품었다. 이 주점은 서서 마시는 선술집이다. 서서 잔을 기울이는 빠른 리듬이 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목이 바싹 말랐던 나는 생맥주로 목을 적시고, 예습해둔 ‘판도라노 하코(판도라의 상자)’를 주문했다. 메뉴판을 보는 척만 한 건, 사실 내 안에서 이미 몇 번이나 주문을 리허설했기 때문이다. 기다림 끝에 나무 판에 올려진 생선회가 도착했다. 아와비(전복), 사바(고등어), 본마구로(참치), 이쿠라(연어알), 민어회, 숭어회 등 제철 생선으로 구성된 메뉴였다. 가격은 999엔 안팎, 놀랄 만큼 얌전한 숫자가 성실한 장난 같은 연출과 만나 허를 찔렀다. 혼자 먹기에 딱 알맞은, 배부르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채우는 안주였다.
이 집은 덜 알려진 생선을 일부러 들여오고, 그날의 입고에 맞춰 칠판을 갈아엎는다. 1층은 회전이 빠르고, 위층은 모임으로 예약을 받는다고 한다. 말 그대로 퇴근길 한 잔하기 적당한 주점이다. 주변 일본 아재들은 천장 아래 설치된 TV 브라운관에 시선을 멈추고 있었다. 야구를 보다가 한신 타이거스의 득점 장면이 나면 환호성이 치고, 다시 수비 시간이 되면 본인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야구를 힐끔 쳐다보며 상황을 읽었다. 나도 덩달아 야구를 보면서 한신 타이거스와의 첫 만남을 가졌다. 오사카에서 태어난 사람도 아닌데, 이내 오사카 사람들과 같은 팀이 이기길 바라고 있었다.
여행은 도착하는 순간이 아니라, 준비를 시작하는 날부터 이미 시작된다. 별표 찍기, 주문 시뮬레이션, 메뉴의 어휘를 외우는 일—이 번거로운 예습은 나에게 작은 용기를 준다. 사카토케의 이름처럼, 술을 풀어내는 건 결국 사람이다. 오늘의 생선을 설명하는 목소리, 잔이 부딪히는 소리, 선선한 저녁 바람에 간판의 획이 흔들리는 장면이 한데 섞여 ‘괜찮은 저녁’의 정의를 다시 써 준다. 혼자 여행하는 밤, 한 접시의 ‘판도라’는 무수한 낯섦을 적당히 풀어 주고, 남은 긴장은 내일 배울 단어들을 위해 아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