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청솔가든>
내 주변에는 우연히도 전라남도 곡성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그 뿌리를 지키고 있는 동료가 두 명이나 있다. 이번 곡성 여행의 동반자 역시 그 둘이었다. 지역 연고가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대화를 하다 보면 반드시 아는 사람이 겹치고, 본인들에서 가족, 가족에서 지인으로 인맥은 가지처럼 뻗어나간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세상 사람은 여섯 단계를 거치면 모두 연결된다’는 케빈 베이컨의 법칙을 절반쯤 믿고 절반쯤 의심한다. 지구상 대부분의 사람과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지방의 인연은 그보다 훨씬 짧은 간격으로 스파크가 튄다. 두세 장의 패만 펼쳐도 같은 무늬가 마주보게 된다.
비가 내리는 곡성 시내. 장날이라 시장 앞은 유독 분주했다. 광주에 전날 도착해 지섭이와 연휴의 첫 술을 기울인 뒤, 숙희가 해장도 할 겸 점심을 사겠다며 시간을 맞춰 놓았다. 우리는 숙희의 양조장 안테나숍이 있는 곡성 시장에서 만났다. 숙희는 미리 몇 가지 메뉴를 물어보더니 수제비를 사주겠다고 했었다. 나는 시장 안의 소박한 식당을 떠올렸으나, 그녀는 우리를 차에 태우고 곡성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곡성은 마치 산과 강이 서로 끌어안고 만든 분지에 자리한 작은 성읍이다. ‘곡성(谷城)’이라는 이름 자체가 골짜기 사이의 성을 뜻하니, 지명이 스스로의 지형을 설명하는 드문 경우다. 길을 따라 이어지는 산의 곡선과 강의 흐름에 내 시선은 자꾸만 끌려갔다. 숙희는 지역 해설가처럼 자신의 고향을 하나씩 짚어주며 차를 몰았다. 비 내리는 풍경 속에서 그녀의 말은 물빛과 뒤섞여 더 선명하게 들렸다.
어느 순간, 한적한 강가에 자리한 가든 형태의 식당이 눈앞에 나타났다. <청솔가든>. 상호 아래 ‘은어랑 참게 이야기’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집의 정체성을 단숨에 알려주는 부제였다. 낮은 천장을 지나 통로를 따라 들어가니, 비로 인해 더 깊어진 보성강의 물빛이 식당 너머로 훤하게 펼쳐졌다. 그 순간 식당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강가의 정원에 초대된 어떤 특별한 무대로 변했다. 물길은 비를 머금어 더 느리게 흘렀고, 그 느림 속에서 시간마저 미끄러지는 듯했다.
숙희는 이미 주문까지 마쳐 놓았다. 반찬이 한 상 깔렸다. 김치와 나물 사이에서 내가 유난히 좋아하는 궁채무침이 보였다. 곧이어 부침개가 나왔다. 초록 기운이 먼저 눈을 스쳤다. 숙희가 “이거 뭘로 만들었게?” 하고 웃으며 물었다. 나는 나물류쯤을 떠올렸지만, 정답은 뜻밖이었다. 재첩을 갈아 넣은 부침개. 잔물결처럼 고운 맛이 입안에 퍼지며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비 오는 강가의 공기와 어울리는 담백함이었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 출입문과 화장실 사이에 놓인 수조에서 꿈틀대는 참게 무리를 보았다. 나에게 민물고기는 여전히 약간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킨다. 어릴 적 어머니가 “민물고기 먹으면 디스토마 생긴다”며 단단히 금지했기 때문이다. 나는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산과 강이 품은 맛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민물고기를 마주하면 신기함과 두려움이 한 번에 올라온다.
마침내 참게수제비가 나왔다. 뚝배기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비 내리는 창밖과 닮아 있었다. 여느 수제비와 달리 된장 베이스의 국물이 주는 묵직한 색감, 그리고 그 속에서 은근히 번지는 참게의 향. 숙희는 “여긴 참게를 갈아 국물 내요”라고 설명했다. 게살을 통째로 받쳐 올린 국물은 깊고 고소했고, 수제비는 물결처럼 두툼하면서도 부드럽게 씹혔다.
섬진강과 보성강이 만나는 곡성에서 참게수제비를 마주하면, 강을 건너온 계절이 뚝배기에서 김으로 피어오르는 풍경을 맛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참게는 가을과 초봄, 강과 바다를 오가며 살을 찌우는 생물이기에 그 맛에는 물의 시간과 계절의 무게가 함께 담긴다. 집집마다 조리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된장과 마늘로 국물베이스를 만들고, 호박과 무, 대파와 깻잎으로 향을 맞추는 것은 비슷하다고 한다. 어떤 곳은 참게를 통째 갈아 넣어 점도를 강조하고, 또 어떤 곳은 게살만 넣어 맑은 결을 살린다. 청솔가든은 잔설처럼 흩어진 게살이 뚝배기 위에서 부유하며 맛을 더했다. 한 숟가락 뜨는 순간, 고소한 향이 스며들고, 된장과 게기름이 만나 깊지만 탁하지 않은 국물은 입안을 아주 천천히 적셔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