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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 두 겹의 시간, 10월의 촛불

용산 <용산숯방><정다방>








나는 해마다 10월을 기다린다. 더위를 유난히 못 견디는 몸이라 여름을 통과하는 동안엔 시간을 ‘빨리감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래서 내 달력은 가을에서 시작된다. 10월은 나에게 새로운 해의 1월이고, 선선한 바람이 나를 새롭게 넘겨준다. 잠을 덜고 하루를 두 겹으로 접어 쓰듯 분주히 살아보려 애쓰는 계절, 그 문턱에 내 생일이 있다. 생일을 대하는 가족의 방식은 제각각이다. 어머니는 “우량아 4.3kg을 낳느라 니 생일만 되면 온몸이 쑤신다”며 늘 선물을 청했고, 아버지와 나는 무심한 편이라 굳이 알리지도, 떠들썩하게 지내지도 않는다. 어릴 적엔 친구들을 불러 떠들썩하게 놀던 날이었으나, 이제는 카카오톡의 생일 표기를 비공개로 돌려둔 채 조용히 지나간다.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내게 내밀어준 호의와 배려 앞에 마음이 벅차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무튼 생일 모임은 당일에는 잘 하지 않는다. 집에서 조용히 보내는 게 이제는 더 당연한 수순이다. 물론 우연히 다른 목적으로 그 날에 모임이 잡히는 날도 있다. 바로 올해가 그렇다. 영은이가 24일에 뭐 하냐며 나에게 모임 참석을 제안했다. 물론 내 생일이란 말은 하지 않았다.


모임 당일이 되었다. 약속 몇 시간 전, 아는 동생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고 문자가 도착했다. 검은 옷을 주로 입는 습관 덕에 곧장 일을 마치고 조문을 다녀올 수 있었다. 생일인 나에게 찾아온 이 소식은, 누군가에게는 이제부터 겹겹이 슬픔으로 기억될 날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했다. 밝음 위에 드리운 어둠처럼, 그 순간 시간은 서로 다른 결을 가진 두 장의 천이 되어 내 하루를 포개었다.


모임 장소에 도착했다. 용산 <용산숯방>은 선진이의 외식업체에서 새로 오픈한 제주고깃집이다. 며칠전 이 장소에 왔던 기록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영은이가 오늘 모임을 이 곳에서 하고 싶어해서 성사된 약속이다. 내 옆자리에 있던 상욱이가 인사말로 “형님, 술 잘 드신다면서요?”가 화근이 되었다. 한라산 소주가 빠르게 돌았다. 의식이 급속도로 희미해져 갔다. 인원이 늘어나자 관심의 화살은 사방으로 튀었다. 말하고, 웃고, 마시는 사이, 순간의 정적이 내려앉았다. 생월자에게 행하는, 잊고 지냈던 의식이 조용히 시작되었다. 내 앞에 놓인 케이크 위로 촛불이 활활—아니, 고요하게—타오를 때, 나는 쑥스러움을 숨기려 눈을 내리깔았지만 가슴 한편이 은근히 데워져 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케이크를 내미는 타인의 손끝은 ‘나라는 존재’를 조용히 확인시키는 작은 의식이었다. 케이크는 값의 합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판이고, 그 나침판이 가리키는 곳에 내가 있었다. 그래서 생일은 민망함을 동반한 행복의 날, 인간이 서로에게 전해주는 빛의 기술을 배우는 날이다. 오늘의 나는 축제와 애도의 사이, 빛과 그림자가 함께 걷는 좁은 다리 위를 건넜다. 다리 끝에서 깨달았다. 우리가 나눠 가진 촛불은 하나에서 왔어도 각자 조금씩 다른 얼굴로 흔들린다는 것을. 그리고 그 미세한 떨림이야말로 살아 있음의 문을 다시 여는 합의라는 것을. 나는 그 합의 위에서, 10월—나의 1월—의 첫 페이지를 다시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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