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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 | 덴가차야 노포에서 배운 ‘혼자의 온도’

오사카 덴가차야 <타코야키 포치>









노포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혼자 먹기 수월하다는 점이다. 낯선 시선이 사방으로 흘러다니는 시대에 오래된 가게들은 기묘하게도 ‘혼자’라는 단어를 부드럽게 중화시키는 힘을 지닌다. 허름한 나무 의자와 빛이 바랜 간판은 세월에 닳으며 더는 사람을 가르는 결을 잃어버리고, 그 안에서는 혼밥 혹은 혼술이 쓸쓸함 대신 고요라는 이름을 얻는다. 혼자 앉아 국물을 뜨는 순간, 노포는 한 사람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방이 되고, 그 느린 공기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함께 있지 않아도 괜찮다”는, 인간이 스스로에게 가장 늦게 건네는 안부를 확인한다.


오사카 덴가차야의 골목을 누비던 저녁, 나는 2차 장소를 향해 GPS의 방향과 발걸음을 번갈아 보며 걷고 있었다. 구글 지도에 저장해둔 후보군 중 현재 이 시점의 기분과 취향이 맞는 세 곳을 추렸다. 첫 집은 만석이라 발길을 돌렸고, 두 번째는 조도가 밝아 여럿이 모여야 맛이 날 듯해 다시 돌아 나왔다. 마지막 남은 가게 앞에서 철판이 바삭바삭 숨을 쉬었다. 김과 소리와 빛이 한데 엉겨 작은 연회를 여는 문턱. 소박한 간판에 <たこやき ぽち 포치>라고 적혀 있었다. 강아지 애칭 같은 이름의 가게 앞에서 나는 용기를 내었다.

문을 열자 ‘생활의 온도’에 맞춰 설계된 작은 세계가 펼쳐졌다. 바 좌석에서 방황하는 순간, 사장님이 내 시선이 TV 야구 중계에 닿았음을 알아챘다. 그리고 말없이 리모컨을 내밀었다. 이 간단한 제스처는 단순히 채널의 소유권을 넘기는 일이 아니었다. 잠시 이 공간의 조율권을 손님에게 위임한다는, 소박한 자치의 선언처럼 느껴졌다. 세상은 거대한 원격 조종에 의해 돌아가는 듯 보이지만, 노포의 리모컨은 반대로 한 사람의 마음결을 따라 흐름을 바꾸는 권리를 허락했다. 그것도 채널의 향방을 모르는 외국인에게 말이다.

오사카가 타코야키의 도시가 된 까닭을 떠올리면, 눈앞의 풍경이 더 또렷해진다. 밀가루를 일상으로 삼아온 ‘분(粉)의 문화’가 뿌리였고, 1930년대 난바의 라디오야키가 문어를 품으며 오늘의 타코야키로 변주되었다. 한 손에 쥐기 쉬운 모양은 상점가와 번화가의 보행 리듬과 자연스럽게 맞물렸고, 서민적 경쟁의 열기는 도우의 점도, 소스의 짭짤함, 토핑의 결을 끝없이 실험하게 했다. 집집마다 ‘타코파(타코야키 파티)’를 여는 생활문화까지 더해지며, 타코야키는 이 도시의 간식이 아니라 일상의 문법이 되었고, 오사카의 얼굴은 동그란 철판 위에서 매일같이 갱신됐다.


포치의 메뉴판은 이 도시의 문법을 또박또박 말한다. 타코야키는 개수로, 술과 안주는 묶음으로, 가격은 주머니 사정과 눈높이를 잰 듯 가지런했다. ‘생맥주–타코야키–가라아게’로 묶인 세트는 만원의 행복(990엔)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고, 균일가로 걸린 잔과 접시들은 ‘가성비’보다는 ‘합리’라는 단어에 더 가까웠다. 합리란 결국 혼자에게도 부담 없이 열리는 문, 그 문지방이 낮다는 뜻이니까.


철판 앞에 서서 조리의 장면을 지켜보는 일은 작은 공연 같았다. 묽게 푼 반죽이 홈을 채우고, 반쯤 굳을 때 얇은 픽이 재빠르게 반죽을 뒤집어 속살을 감싸 안는다. 겉은 얇게 막이 씌워져 바삭한 표피를 만들고, 속은 스튜처럼 흐물거리는 중앙을 지킨다. 접시 위로 가쓰오부시가 더운 공기를 가르며 춤을 추고, 아오노리(파래가루)가 초록의 쉼표를 찍는다. 첫 알을 베어 무는 순간, 담백함이 입안을 스치는 듯 했으나 너무 뜨거워 저글링하며 열을 식혔다.


생각해보면, 노포가 혼자에게 관대하다는 말은 결국 질서의 방식에 관한 이야기다. 프랜차이즈가 규격의 위로를 준다면, 노포는 관계의 위로를 준다. 규칙 대신 눈치, 매뉴얼 대신 눈빛이 흐르는 곳. 사장님이 리모컨을 내어주는 장면은 ‘당신의 속도로 머물러도 괜찮다’는, 문장으로는 적기 어려운 허락을 손끝으로 쓴다. 그래서 노포는 한 사람의 시간을 견딜 수 있게 돕는다.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는 대신 내부의 호흡을 살려, 혼자라는 사실을 결함이 아니라 상태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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