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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 | 오래된 강을 택하는 마음

마포 <밀로커피 로스터스>









마포는 하루가 다르게 새 지도가 그려지는 동네다. 간판이 바뀌고, 취향에 민감하고, 메뉴가 유행을 좇아 얇게 번지는 동안, 나의 하루는 그 흐름을 따라갈 수가 없다. 특히, 새로운 카페는 하루가 다르게 생겨난다. 시간이 날때마다 새로운 카페를 찾아가 본다. 그래서 더더욱 ‘단골’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잘생김이 늘 마음을 움직이지 않듯, 카페도 그렇다. 조각 같은 외관이 아니라도 정이 가고, 오래 볼수록 매력이 배어 나오는 카페가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첫 10분—외관과 내부의 호흡, 사장님의 접객과 매장의 층고, 원두가 품은 추구미까지—그 짧은 관찰의 시간에 나는 묵음처럼 흐르는 ‘이 집의 성정’을 읽는다. 오늘의 발견이 있는 날은 왠지 뿌듯하다.


그래도 단골카페를 잊지 않는다. 홍대 <밀로커피 로스터스>는 나의 마포카페지도의 ‘베스트 즐겨찾기’다. 이 동네가 떠들썩할수록 이 카페의 시간은 더 느리게 흐른다. 요즘은 비슷한 무드를 흉내 내는 곳이 늘었지만, 이 집의 느림은 모방할 수 없는 습관에 가깝다. 서울대 근처에서 시작해 홍대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표정을 바꾸어도 결을 바꾸지 않은 집—그 역사를 처음 들었을 때 ‘역사’라는 단어가 과장이 아니구나 싶었다. 브라질 계열의 깊은 단맛을 바탕으로 한 로스팅, 그리고 오랜 경력의 로스터가 쌓아 올린 일관성은 뼈대가 되어 잔마다 같은 척추를 세운다. 나는 그 한결같음을, 첫 모금의 온도와 마지막 모금의 고요가 닮아 있는 방식으로 사랑한다. 잔을 들어 올릴 때마다 속으로 되뇐다. 여기서는 계절이 먼저 변하지 않는다고.


단골이 다시 오게 되는 이유는 결국 잔 안에서 증명된다. 이 집의 상징 같은 ‘몽블랑’—뜨거운 에스프레소 위에 차가운 크림을 얹은 한 잔—을 만났을 때, 나는 ‘부드러움에도 결이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먼저 티스푼으로 크림을 한 숟갈 떠서 밀도를 확인하고, 그다음엔 잔을 기울여 커피와 크림이 입안에서 얇게 포개지도록 마신다. 누군가와 같이 오면 늘 몽블랑을 추천한다. 혼자 오면 추천받은 원두로 내린 필터커피를 주문한다.


볶은 날 바로 보내는 원두처럼 신선함을 신조로 삼는 운영, 하얀 벽과 우드 톤이 만들어내는 차분한 공기, 문턱에서 한 번 걸러지는 홍대의 소음—이 모든 것이 ‘내 자리를 찾았다’는 심리적 안전망을 직조한다. 나는 약속이 없을 때도, 글을 써야 할 때도, 마음이 가는 사람을 만날 때도, 혹은 마음을 비우고 싶을 때도 이곳을 향한다. 반복은 권태가 아니라, 신뢰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이 집은 증명한다.


새로운 카페가 생길 때마다 시간을 내어 찾아가는 습관은 여전히 계속된다. 낯선 얼굴들의 반짝임을 구경하고, 10분의 관찰로 그 집의 성정을 가늠한다. 그러나 때로는 화려한 표정 대신 오래 묵힌 문장처럼 천천히 스며드는 맛이 생각날 때면 단골 카페를 찾는다. 누군가 마포의 카페 하나를 추천해 달라 할 때 내가 주저 없이 “밀로 커피 로스터스”라고 답하는 까닭이 된다. 유행은 파도처럼 밀려오지만, 생활은 강처럼 흘러간다. 나는 파도의 방향을 보며 즐겁게 흔들리고, 강의 흐름을 따라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리고 단골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 잔의 온도로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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