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구 | 시장 속에 눌어붙은 맛의 기억

대구 <서문시장>








어린 날의 기억을 되짚다 보면, 문득 혀끝에서 깨어나는 맛이 있다. 안양 석수동과 서울 금천구 시흥동, 나의 사춘기가 깃든 그 동네에서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한 조각은 ‘걸레만두’라는 조금은 거칠지만, 따뜻하고 정겨운 이름을 가진 분식이었다. 시흥 대명시장의 허름한 좌판 세 개, 그리고 그 위에 놓인 납작하고 기름진 만두 한 줌이 나의 미성년 시절을 관통하고 있다.


매운 떡볶이는 한 조각도 끝내 넘기지 못했던 아이였다. 자극적인 맛에 길들지 못한 나는, 매번 그 붉은 강물은 외면하고, 만두만 골라 집어먹곤 했다. 그 만두는, 한 입 베어 물면 바삭한 껍질 사이로 당면이 미끄러지듯 흘러나오고, 노릇하게 눌어붙은 기름기의 무게가 혀를 눌렀다. 사람들은 그것을 ‘걸레처럼 생겼다’며 걸레만두라 불렀지만, 나에게 그것은 시장에서 건져 올린 금빛의 추억이었다.


그 기억을 품고 대구 서문시장을 찾았다. 어린 시절을 서문시장에 맡긴 친구와 만나는 날이었다. 단순한 ‘맛집 탐방’이 아닌, 각자의 시간 속 분식을 들춰내는 일이었다. 먼저 도착한 나는 시장 안을 한 바퀴 돌았다. 구수한 전의 냄새, 좌판 위에서 소리 없이 움직이는 주름진 손들, 그리고 피자 도우처럼 생긴, 사각형의 낯선 누룩이 내 발길을 붙들었다. 동그란 형태가 익숙한 내게, 그것은 낯설면서도 묘하게 반가운 모양이었다. 야구 플레이트를 닮은, 누룩이 품은 발효의 기억은 아직 말을 걸지 않았다.


잠시 후 도착한 친구는, 시장 안을 돌아다니며 자기 유년의 조각들을 술술 꺼내 놓았다. 그 말들이 하나하나 좌판 위 반찬처럼 놓이고, 우리는 입과 눈을 움직이며 그 시절을 씹어 삼켰다. 매운 갈비찜 냄새가 골목을 지나 <함지박>이라는 간판 아래 섰다. 이름부터 푸근했다. 20년 넘는 시간 동안 칼국수와 돈가스를 담아내며, 시장 속 허기를 두 손으로 감싸왔다고 했다. 내가 먹지 않았어도 친구가 들려준 그 집의 음식들은, 이미 내 기억의 한편에 스며들었다.


첫 끼는 <에덴김밥>에서 시작했다. 다소 어수선한 공간이었지만, 혼잡함마저 풍요로웠다. 40년 전통의 분식집이라는 문구는 어쩐지 오래된 사랑노래 같았다. 김밥이 철판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고, 주인장의 손끝에서 계란물은 노릇한 금박처럼 입혀졌다. 하지만 그날의 주인공은 ‘김치’였다. 그 김치는, 마치 세월을 삭힌 어머니의 표정처럼 깊고 진한 맛으로 김밥보다 더 큰 존재감을 자랑했다.


그 김밥 한 줄을 다 삼키기도 전에, 친구가 말했다. "포만감을 전부 채우지 마세요. 진짜는 아직 안 나왔어요." 그 말에 이끌려 간 곳이 바로 <삼각만두 1호점>이었다.


삼각형의 만두는 마치 장인의 접힌 손처럼 단단했고, 바삭한 외피 속엔 당면이 그득 담겨 있었다. ‘챱챱’ 소리를 내며 철판 위를 뒤집는 사장님의 손놀림은 어느 묘기의 공연처럼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짭조름한 간장 소스, 얇게 썬 양파, 땡초 한 조각—그 만두 하나는 단지 음식이 아니라, 기술과 연습과 기다림이 만들어낸 무언의 언어 같았다.


분식은 단순한 길거리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한 도시의 결을, 한 사람의 시절을, 그리고 시장이라는 복잡하고 정겨운 풍경을 담는 그릇이다. 분식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코를 간지르는 기름 냄새와 바삭한 식감, 서툰 대화 속에 피어나는 웃음과 함께. 그러니, 언젠가 다시 대명시장에 가게 된다면, 나는 기꺼이 걸레만두 한 조각을 다시 집어 들 것이다. 시간의 주름을 베어 물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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