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춘천 | 춘천에서 만난 집밥

춘천 <강릉집>







혼자 밥을 먹는다는 건, 때론 온몸으로 세상을 설득하는 일이다. 비워진 맞은편 자리에 밥그릇이 놓이지 않도록 하는 것, 주문을 받을 때 눈치를 덜 보이기 위해 어조를 단정히 다듬는 것, 그리고 무심한 듯 하지만 속으론 ‘1인상 가능한가요?’를 몇 번이나 연습하고 오는 것.


나는 식당의 방식을 존중하려 한다. 원래 순댓국에 다대기를 넣지 않고 먹지만, 그 순댓국집이 넣어야 한다면 그 방식대로 먹는다. 그건 나에게 불편함이 아니라, 식당이라는 작은 우주에 몸을 맞추는 예의이고, 음식이라는 언어로 전해지는 철학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난 오히려 그 룰을 따르는 게 편하다.


춘천에 도착한 아침, 국밥 대신 백반을 고른 건 어떤 직감이었다. 여행의 첫 끼를 채우는 감각적인 선택. 그날 내가 향한 곳은, 소문으로만 들었던 <강릉집>이었다. 이 작은 식당이 특별했던 건 단순히 맛의 문제가 아니었다. 혼자 온 사람도 너그러이 품는다는 점. 그 작고 다정한 배려가, 긴 여행길에서 받은 첫 번째 환대였다.


춘천 중앙로터리 대로에서 한 번 꺾이는 골목으로 들어왔다. 오래된 간판 하나가 햇살 아래 오래 묵은 향기를 품고 있었다. 서울의 강릉도, 바다의 강릉도 아닌, 누군가의 마음에 자리한 ‘강릉’이라는 지명. 그 그리움을 식당 이름으로 품고, 주인장은 40년을 건너왔다. 주인장은 어머니와 같이 장사를 해왔는데, 어머니의 고향이 강릉이라 ‘강릉집’으로 지었다고 한다. 강릉의 손맛이 담긴 식당이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오래된 집 한 채가 팔을 벌려 맞이했다. 시골 외갓집 같은 풍경. 낡은 나무탁자엔 세월의 무늬가 배어 있고, 누렇게 바랜 벽지의 낙서는 마치 오래된 편지를 읽는 듯 정겹다. 벽면에 빽빽이 붙은 사진들과 낙서, 주방 구석에 놓인 장독대 모형 하나까지—모든 것이 이 집의 연대기를 조용히 들려준다.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45분. 어쩌면 식당과 나만의 시간을 노린 선택이었지만, 이미 몇몇의 마음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작은 1인은 은근히 빠르게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반찬이 하나둘 차려지며 쟁반이 완성될 때, 나는 묘한 뭉클함을 느낀다. 고등어 한 점, 무 조림, 계란프라이 하나에도 정성이 느껴졌다. 소박하지만 그 소박함이란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깊은 성의. 바삭하게 구워진 생선에서 나는 온기, 맑고 시원한 국물 한 모금에서 전해지는 진심. 이곳의 음식은 특별하려 애쓰지 않기에 더 특별했다.


‘집밥’이란 무엇일까. 어쩌면 기름지지 않은 양념, 크지 않은 상차림, 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진심과 기억. ‘강릉집’의 밥상은 먹는 이의 허기가 아닌 마음을 먼저 살핀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아침에 정갈히 차려주시던 밥상처럼—그 잊고 있던 기억이 쟁반 위에서 되살아났다. 실제로 외할머니의 맛이 나는 포인트들이 있었다. 마음의 버튼이 눌려진 순간이었다.


식당 운영도 여전히 아날로그 그대로다. 입구 옆에 놓인 노트에 이름을 적고 기다리는 시스템. 사장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때, 손님들 사이에서 묘한 유대감이 흘렀다. 주인 분의 호탕하고 유쾌한 접객모드에 대부분 감동한 듯했다. 매일매일 저런 텐션을 어찌 유지하는지도 미스터리다.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도 가끔 오는 나에게 저 정도의 텐션을 제공하진 않았는데 말이다. 다 먹고 나오는 길에도 마중 나와 인사해주셨다.


나는 이 식당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그 이유는 단순히 ‘맛있어서’가 아니다. 나를 마치 오래 기다렸다는 듯 맞아준 풍경과 마음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그리워질 향기 같은 밥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릉집’에서의 식사는 고향의 향기를 들이마시는 일이며, 누군가의 그리움에 잠시 앉아 쉬어가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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