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박찬호 기념관>
누구에게나 과거는 있다. 자라온 시간만큼이나 복잡하고 다채로운 역사의 조각들이 마음 한구석에 쌓인다. 그것은 사적 영역에 속하기에, 삶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제한된 몇몇 사람들과만 공유된다. 그러나 때때로 새로운 인연과 마주할 때, 나는 그들의 살아온 역사에 푹 빠지게 된다. 마치 오래된 흑백 필름을 다시 감는 것처럼, 각자의 인생사가 흘러나오고, 나는 그 속에 나를 대입하며 조용히 돌이켜보곤 한다. 비교가 아닌, 되새김이다. 다른 삶의 결이 내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순간이다.
예전에 들은 이야기가 있다. 춘천시에서 손흥민 선수에게 ‘손흥민 거리’를 조성하겠다고 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조심스레 고사했다. 그의 답은 깊은 울림이 있었다. 지금은 이름 석 자에 사람들이 모여들겠지만, 언젠가 세월이 흘러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질 그때, 거리 위의 이름은 박제가 되고 말 것이라고. 그 말에는 세월에 대한 겸허함과 진짜 영광이 무엇인지를 아는 이의 철학이 담겨 있었다.
공주라는 지명을 들으면,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다름 아닌 ‘박찬호’다. IMF의 먹구름이 드리운 시절, 국민들에게 짧은 숨통 같은 희망을 안겨주던, 마운드 위의 전설. 고등학생이던 나에게 그의 선발경기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었다. 교실마다 울려 퍼지던 안내 방송, 중계 소리 속에서 아이들의 숨소리마저 조용해졌던 그 날들. 모두가 TV 앞에 모여 앉아 그의 투구에 심장을 걸고 응원하던, 멈춰진 시간의 기억이 있다.
박찬호 선수는 공주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리고 먼 길을 돌아 다시 고향 팀인 한화 이글스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냈다. 공주시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생가 터에 <박찬호 기념관>을 세웠다. 언제 한 번 가보고 싶던 그곳, 조금은 시간이 지난 흔적들—빛바랜 표지판과 낡은 거리 조성이 눈에 들어왔지만, 나는 그 감상을 조용히 지워냈다.
기념관에 들어서자, 그의 유년기부터 메이저리그 시절까지의 생생한 발자취가 공간마다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중학교 시절의 유니폼, 트로피, 그리고 어느 한 구석의 낡은 글러브 하나. 어릴 적 브라운관 속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전시물 위로 덧입혀지며, 나는 그 시절로 슬며시 미끄러져 들어갔다. 2층에는 미국 시절의 락커룸이 재현되어 있었다. LA 다저스, 텍사스 레인저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그가 지나온 팀들의 유니폼과 배트, 모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 모양을 본뜬 석고 조형물. 마치 지금이라도 그 손이 다시 공을 쥐고 힘껏 던질 것만 같았다.
나는 사실 박찬호 선수보다 같은 시대를 풍미한 김병현 선수를 더 좋아했었다. 그러나 ‘국가적 영웅’이라는 말 앞에서는 언제나 고개를 숙였다. 누군가의 이름이 길이 남을 만한 것은 기록 때문만은 아니다. 어떤 이름은 시대와 감정을 품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조용히 오래도록 머문다.
박찬호라는 이름은 단지 야구 선수 하나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한 시대를 어떻게 견뎠는지, 어떤 희망에 기대어 하루를 버텼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기념관을 나오며, 나는 그 이름을 다시 곱씹었다. 시간은 흐르고, 인기는 옅어져도, 진짜 기억은 우리 마음 속에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살아간다. 마치 마운드 위에서 한참을 바라본 후 던졌던 그의 직구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