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라는 행성_충주 <탄금정><아트><커피단월>
나는 친구가 지방으로 출장 가거나 일하러 자차를 타고 갈 때, 그 길에 동승하는 일이 마치 남의 인생에 잠시 탑승하는 것처럼 흥미롭다. 1년 중 많지도 않은, 대략 한두 번뿐인 이 동행의 시간은 늘 내 계획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운전대를 잡은 친구의 일정과 목적지에 내 하루를 맞춰야 하니, 이 여행은 언제나 내 궤도가 아닌 타인의 궤도 위를 미끄러지는 작은 위성 같다. 나는 그 궤도를 잠깐 빌려 타고, 창밖 풍경을 훔쳐보는 승객이 된다. 삶이라는 우주에서 나 혼자였다면 결코 찍지 않았을 좌표들로 가게 만드는 힘, 그게 타인의 스케줄이 가진 묘한 중력이다.
충주에 있는 건국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영은이를 따라 작년에 이어 올해도 좇아 내려간 날, 여행의 출발선은 항상 그렇듯 광교역 근처 스타벅스였다. 영은이가 도착할 때까지 나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흘려보낼지 느슨하게 상상했다. 충주까지 내려가는 길에 먹을 간식도 미리 골라두었다. 영은이가 도착하자, 그녀는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향해 핸들을 돌렸고, 나는 목적지에 도착해야 하는 사람이 아님에도 그의 일정에 묶인 채로 묘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책임은 운전석에, 자유는 조수석에 앉아 있는 구조. 그게 우리가 내려가는 차 안의 역학이었다. 작년에는 대학 교정에 함께 내려 영은이는 강의실로 들어가고, 그 시간 동안 나는 나 나름대로의 충주 여행을 시작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영은이가 말했다. “이번에는 너 첫 여행지에 내려줄까?” 그녀의 말에서, 이 도시는 조금씩 내 몫의 지분을 얻어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탄금정에서 내렸다.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언덕머리, 탄금대 정상에 자리한 팔각 정자. 충주의 풍경과 역사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우리나라 3대 악성 가운데 한 사람인 우륵이 가야금을 타며 강과 산을 벗 삼았다는 데서 ‘거문고를 탄다’는 뜻의 탄금대·탄금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다만, 그 풍경을 얻기 위해서는 100개가 훌쩍 넘는 계단을 올라야 했다. 계단의 폭은 좁고 층마다 높이도 높은데다가 바닥은 미묘하게 불규칙해서, 고소공포증이 있는 내게는 체력보다 다른 종류의 용기가 더 많이 필요했다.
영은이 수업 종료시간에 맞춰 캠퍼스에 도착했다. 영은이는 오면서 점심 메뉴 후보를 몇 개 던졌다. 그중에 특히 귀에 걸린 건 학교 인근 중국집 이야기였다. “탕수육이 진짜 맛있는데, 혼자 먹기엔 그래서 아직 못 먹었어.” 결국 내게는 이 중국집이 정답처럼 들렸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사장님의 환대가 우리를 맞았다. 흔히 학교 근처 식당마다 몇 명쯤 있다는, 학생들과 두루 친한 사장님의 전형 같은 분위기였다. 옆 테이블에서는 이미 졸업한 졸업생이 들러 사장님과 허물없이 근황을 주고받고 있었다. 짬뽕의 양은 눈으로 보기에도 어마어마했다. 국물은 생각보다 매웠지만 이상하게도 숟가락을 멈출 수가 없었다. 충주가 나름 짬뽕으로 유명한 도시이고, 전체적으로 간이 맵기로 유명하다는 말을 들으니, 이 매운맛이 일종의 지역 언어처럼 느껴졌다.
점심을 마치고 카페로 이동했다. 역시나 영은이가 자주 가는 카페, 전망이 좋은 그곳으로. <커피단월>은 단월강변을 내려다보는 3층짜리 대형 베이커리 카페다. 마치 강 위에 떠 있는 현대식 누각 같았다. 강을 끼고 길게 난 좌석은 신발을 벗고 앉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트레이 위에 빵과 머그잔을 올려두고 사진을 찍으려는데, 영은이가 슬쩍 물었다. “너 사진 잘 찍잖아, 각도랑 팁 좀 알려줘.” 나는 딱히 매뉴얼이 있는 것도 아니라 직관적으로 설명하며 내가 평소에 찍는 방식을 시연해 보였을 뿐인데, 영은이가 과하게 리액션을 해주니 왠지 정말 잘 찍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과장된 칭찬 속에서 잠시 자기 자신이 버전 업되는 기분, 그 사소한 감각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작년에는 점심도 따로 먹고, 충주 시내를 혼자 돌아다니다가 영은이의 수업이 끝난 뒤에야 다시 만나 서울로 함께 올라갔었다. 혼자만의 시간은 분명 충분했고, 그 나름대로 좋은 여행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의 공강 시간에 맞춰 함께 밥을 먹고,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나는 먼저 서울로 돌아가기로 했다. 충주맨이 키워놓은 충주지만, 나에게 충주는 김영은 덕분에 오게된 도시다. 생각해 보면, 타인의 궤도에 올라타는 이런 동행 여행은 내 삶의 지도를 조금씩 수정하는 일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