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반김><콩치노 콩크리트><루버월>
빠르게 흐르는 도심의 시간을 비켜서, 나는 파주로 향했다. 속도는 줄이고 감각은 더해, 느리게 걷고 깊게 바라보며 하루를 채우고 싶었다. 시간을 되감기라도 하듯, 이곳의 풍경은 내 일상과는 다른 호흡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파주는 그렇게, ‘잠시 멈춤’을 허락해주는 도시였다.
먼저 찾은 곳은 소반을 만드는 양병용 작가님의 작업실이자 전시장인 <반김 Craft>였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놓임에는 정성이 스며 있었고, 소반 하나에도 고요한 이야기가 내려앉아 있었다. 작품을 감상한다기보다는, 그 시간과 정신을 마주 보는 느낌이었다.
통창 너머로 펼쳐진 푸른 하늘은 마음을 여는 창이었고, 그 아래서 차 한 잔을 건네받아 마셨다. 우연히 닿은 자리였지만, 작가님과 나눈 대화는 의외로 현실적이고 땅에 발을 붙인 이야기였다. 예술도 삶도 결국, 다르지 않다는 걸 새삼 느끼며 조용히 호흡을 고쳐봤다.
음악은 내가 자리를 오래 지킬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힘이다. 그래서 찾은 곳이 <콩치노 콩크리트>, 국내 최대 LP 음악 감상실이었다. 이름부터 독특한 이 공간은 ‘화합하다, 함께 노래하다’는 의미의 라틴어 콩치노(concino)와 건축 재료인 콘크리트를 결합해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1층에 들어서자 공연장처럼 스피커를 향한 의자들이 정돈되어 있었고, 공간을 채우는 음향은 마치 공기보다도 먼저 나를 감쌌다. 클래식을 좋아하지 않아도 좋다. 이곳에서는 선율이 말을 걸고, 나는 그에 몸을 실으면 그뿐이다. 생수 한 병 외에는 어떤 음식도 허락되지 않는 이곳의 규칙은, 감상에의 몰입을 위한 배려처럼 느껴졌다.
2층에 올라서면 임진강 너머로 북한까지 조망할 수 있다. 그 낯선 풍경은 마치 오래전 시간의 끝에 서 있는 듯한 감정을 안겨준다. 소리는 안으로 흐르고, 시선은 북으로 향하고, 마음은 고요히 그 사이에 머문다.
파주 여행의 마지막은 커피 향보다 먼저 빛과 구조가 인상적인 카페, <루버월 Louver Wall>이었다. 외관부터 독특한 이 건물은 직사광선을 걸러내며 따뜻한 빛을 머금는 구조적 장치, ‘루버’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실내로 들어서면 채광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공간의 결을 따라 파고든다. 높은 층고는 마치 성소처럼 고요하고, 긴 창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은 커피 잔에 따뜻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곳에는 고양이도 일곱이나 함께 산다.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와 무심히 곁을 내어주는 고양이들의 태도는, 이 공간의 속도와 묘하게 닮아 있다.
3층짜리 건물의 1층은 카페, 2, 3층은 부부가 사는 주거 공간으로 사용된다고 했다. 일과 삶이 겹쳐진 이 집은 마치 공간 자체가 일상이며 작품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