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이응노미술관>
2023년 봄, 사당역에서의 약속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시간의 틈을 따라 조용히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린 시절 외가가 있던 봉천동, 낙성대를 지나던 그 길 위 어딘가에 분명 미술관이 있었지만, 머릿속 기억의 필름은 한 장면조차 뚜렷이 남아 있지 않았다. 처음 보는 듯 낯설고, 익숙한 듯 낯선, 오래된 공관 같은 미술관의 풍경이 오히려 반가웠다. 번쩍이는 도시의 겉모습과는 달리, 그곳은 고요함을 품고 있었다.
그날 나는 준비 없이 한 이름을 마주했다. ‘김윤신.’ 묵직한 울림이 느껴지는 이름이었고, 나는 막연히 남성 작가라 짐작했지만, 전시장을 들어서며 그 오해는 부드럽게 부서졌다. 1935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그녀는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였다. 전시장 곳곳을 메운 작품들은 마치 깊은 숲 속을 거니는 듯한 감각을 일으켰다. 나무결을 따라 조각한 자태, 그 안에 담긴 사유와 감정은 단단하고도 따뜻했다.
시간이 지나 대전 이응노미술관에서 그녀의 작품을 다시 만났다. 혹서의 계절, 태양이 땅을 내려찍던 그날, <아르헨티나에서 온 편지>라는 전시 제목이 투명한 유리문에 새겨져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더위는 조각난 유리처럼 사라지고, 시원한 예술의 기류가 피부 위를 스쳤다. 전시는 김윤신이 파리에서 이응노를 만나 예술적 교감을 나누던 시기부터, 아르헨티나에 정착해 보낸 40년의 창작 여정을 고요히 되짚는다.
그녀의 예술은 단순히 나무를 깎아 형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을 다듬는 행위였고, 고통을 견디는 의식이었다. 나무라는 물성 속에 자신의 철학을 불어넣고, 동양과 서양, 조각과 회화, 자연과 인간 사이의 간극을 부드럽게 메우며 ‘합이합일, 분이분일’의 동양적 사유를 조형 언어로 풀어냈다. 김윤신에게 나무는 삶의 동반자였고, 그녀는 그것에 생명을 새기듯 칼을 대었다.
상파울루 비엔날레 참가 이후, 그녀는 남미 대지의 품으로 향했다. 아르헨티나의 대지와 햇살, 낯선 말들이 그녀의 삶을 감싸 안았다. 그곳에서 그녀는 ‘알가로보’라 불리는 강인한 나무를 전기톱으로 자르고, 깎고, 안고, 마주하며 고독과 대화했다. 때론 하루 한 끼로 버티며, 때론 술에 기댄 밤들을 보내면서도, 그녀는 결코 끈을 놓지 않았다. 그 힘겨운 작업의 나날 속에서도 예술은 그녀의 숨결이자 기도였고, 생존의 이유이자 구원이 되었다.
김윤신의 작품은 조용하지만 강하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단단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유연하다. 아르헨티나에서 보낸 40년은 그녀를 단지 외국에 머문 예술가가 아니라, 국경과 장르를 넘나드는 ‘제3의 공간’을 창조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나는 두 번의 전시를 통해 김윤신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아니, 그녀의 삶을 마주했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낯선 타지에서, 언어도 문화도 다르던 그곳에서, 그녀는 흔들림 없이 창작의 길을 걸었다. 그 끈기와 진심, 그리고 타협하지 않는 태도는 단순히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넘어서, 예술을 삶으로 살아낸 한 인간의 숭고한 궤적이었다.
나는 이제 그녀의 나무 앞에 서면, 단지 작품이 아닌 한 사람의 생을 마주한 듯한 경외감을 느낀다. 어쩌면 그녀가 우리에게 보내온 편지는, 그 거대한 나무의 나이테처럼, 조용히 그러나 또렷이, 오랜 시간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리고 나는 그 편지를 이제야 읽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