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속초 | 난전에서 만난 마지막 여름의 맛

속초 <오징어난장>








나는 육고기보다 바닷고기를 좋아한다. 그것은 단지 취향의 차원이 아니다. 육고기가 몸속 장기를 오랫동안 무겁게 머무는 것과 달리, 해산물은 마치 파도가 밀려오듯 속을 훑고 지나간다. 바람처럼 가볍고, 해무처럼 사라지는 감촉. 그래서일까. 나는 언제부턴가 육고기보다 해산물을, 그중에서도 ‘날것’ 그대로의 바다를 입에 넣는 것을 더 자주 찾게 되었다.


익히기 전의 생선, 막 썰린 회 한 점은 삶의 소란을 가라앉히는 묘약이었다. 여름엔 투명한 오징어회, 겨울엔 단단하게 오른 돌문어회. 특히 횟집에서라면, 나는 서슴없이 아나고와 오징어를 고른다. 대학교 시절, 친구와 마지막 소줏잔을 기울이고 싶을 때, 자취방 인근 횟집에서 오징어 두 마리를 횟감을 사와 마무리를 하였다. 값도 착하고, 맛도 청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오징어가 ‘금징어’가 될 줄, 그땐 미처 몰랐다.

몇 해 전부터 오징어는 시장에서도, 바다에서도, 우리의 식탁에서도 점점 자취를 감추었다. 기후 변화와 해양 온도 상승, 남획과 먹이 부족. 눈에 보이지 않는 바다의 상처가 고스란히 한 마리 생선의 몸값으로 전해졌다. 흔하고 소박했던 오징어는 어느덧 귀하고 비싼 생선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 이름 앞에 ‘금(金)’ 자를 붙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속초로 향했다. 코리아 둘레길 원정대라는 이름으로 함께했던 이들과의 짧은 여정. 속초 여행의 호스트 형에게, 나는 한 마디만은 꼭 전했다. "오징어난전은, 꼭 가고 싶어." 굳이 다 함께 가지 않아도 좋았다. 뜻 맞는 이들끼리, 오후 즈음 조용히 다녀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속초 중앙시장 인근, 그 유명한 <오징어난전>. 하지만 기대와 달리 주말의 난전은 어수선했다. 아니, 어수선하기엔 너무 고요했다. 장사를 나선 가게는 겨우 다섯 손가락 안팎. 수족관조차 텅 빈 곳도 있었고, 오징어 한 마리를 2만 5천 원에 부르는 상인도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난전을 한 바퀴 돌고, 또 돌며 눈과 발로 시장을 살폈다. 그러다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8호 ‘진명호’ 앞에 멈췄다. 넉살 좋은 사장님은 마리당 만 원이라는, 믿을 수 없는 가격을 제시했다. 대신 우리는 오징어로 가능한 요리를 모두 주문해 먹었다. 술은 그날따라 더욱 깊고 짜릿했다. 아마 바닷바람 때문이었을까. 2023년 여름, 우리는 그렇게 난전에서 바다를 만났다. 잠시 잊었던, 하지만 절대 잊지 못할 바다의 맛이었다.


올해, 어획량이 다시 조금씩 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오징어가 동해로 돌아왔단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귀환을 실감하지 못한다. 횟집 가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매장 수족관은 여전히 휑하다. 바다는 돌아왔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 속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언젠가 다시, 오징어가 흔한 생선으로 돌아오는 날이 올까. 그날엔 오늘보다 조금 더 많은 햇반과 조미김을 챙겨, 오징어난전을 찾아갈 것이다. 아침 일찍, 해 뜨기 전에. 전기도, 간판도, 광고도 없는 그곳에서, 생선 한 마리와 계절 한 점을 나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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