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양양째복>
여행의 마지막 식사는 이상하게도 소홀해지기 쉽다. 낯선 곳에 정을 붙일 틈도 없이 짐을 싸고, 머릿속은 이미 돌아가는 길의 고속도로 상황과 도착 후의 일상으로 가득하다. 대충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거나 휴게소에서 적당히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렇게 허투루 지나가버린 식사는, 여행의 끝자락을 휘발성 있게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나는 안다. 여행의 끝은 곧 기억의 시작이라는 것을. 마지막 한 끼가 제대로 마무리되어야 그 여행은 온전한 원을 그린다. 마지막까지 맛있게 먹은 식사는 허기를 채우는 행위를 넘어, 떠났던 시간을 접어 넣는 작은 의식 같다. 입에 머문 마지막 온도는 그 땅의 공기와 향, 사람들의 표정을 함께 데려오기 때문이다.
양양에서의 여행 마지막 날 아침. 숙소를 나서기 전, 우리는 각자의 침구 위에 뒹굴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누군가, 해장을 무엇으로 할지를 물었다. 대부분 건성으로 넘겼지만, 나는 이 순간을 위해 미리 리스트를 준비해두었다. 단체 채팅방에 후보 식당들을 띄우자, 만장일치로 한 곳에 의견이 모여졌다. <양양째복>, 낯선 이름이지만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 그곳이었다.
먼저, ‘째복’이란 단어부터 음미해보자. 강원도 양양의 바다에는 ‘째복’이라 불리는 작은 조개가 있다. 투박하고 수줍은 생김새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지만, 그 속엔 짭조름한 바다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째복은 오래도록 양양의 밥상에서 국물이 되어왔고, 시원한 물회가 되어왔다. 그 고요한 역사를 그대로 품은 식당이 <양양째복>이다.
강현면 해안길을 따라 난 도로 끝, 파도소리가 배경음이 되는 자리에 식당은 있었다. 사장님은 처음 식당을 열며, 조개의 생명력을 해치지 않으면서 바다의 맛을 온전히 전하려 애썼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곳의 째복국은 한 번 끓였다가 바로 불을 끈다. 오래 끓이면 조개의 살은 질겨지고, 바다가 내던 첫 인사는 증발해버리기 때문이다. 그 섬세한 조리 방식 덕에 째복국은 바다의 결을 그대로 담아낸다.
우리는 빨간 국물의 째복국과 흰 국물의 째복탕을 함께 시켰다. 매운 국물에는 통째로 조개가 담겨 있었고, 그 자체로 한 그릇의 풍경 같았다. 바다를 눈으로 먼저 마신 다음, 혀끝으로 음미했다. 고요하고 짭짤한 맛, 거기에 소주 한 잔이 어우러지자, 오전임에도 술잔이 바뻐졌다. 째복물회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아쉬움을 남기는 것도 기억을 선명히 남기는 기술이니까.
식사가 나오기 전, 밑반찬 하나하나도 허투루 넘길 수 없었다. 특히 어묵. 나는 식당에서 어묵이 반찬으로 나올 때, 유난히 그 품질을 따지는 사람이다. 대개는 흘려보내기 쉬운 재료지만, 여기에 진심이 담겼을 때 그 집의 진가가 드러난다고 믿는다. 양양째복의 어묵은 윤기가 흐르고 탱글탱글했다. 생선살의 신선함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씹을수록 고소한 감칠맛이 배어났다. ‘별 것 아닌 것’에 공을 들이는 식당은, 결국 어떤 한 끼도 허투루 만들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양양의 마지막 아침을, 바다의 잔물결 같은 국물과 함께 마무리했다. 누군가는 단순한 해장이겠지만, 나는 알았다. 그건 돌아가는 길목에 놓인 한 편의 기억창고였다. 째복이라는 이름도, 빨간 국물 속 조개껍데기의 윤기도, 옆 테이블의 아재들의 웃음소리도 함께 기억 속에 붙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