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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 | 삼고초려했던 오뎅바

오사카 덴가차야 <오뎅 마루코메>







그야말로 ‘삼고초려’였다. 오사카 도심의 번쩍이는 간판들보다 내 마음을 더 강하게 끌어당긴 곳은, 덴가차야라는 다소 소박한 동네의 오뎅바였다. ‘변두리’라는 말은 대개 기대치를 낮추는 장치로 쓰이지만, 여행에서만큼은 반대로 작동한다. 화려함이 덜한 자리에서 오히려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법이니까. 나는 대충 영업시간만 훑고, 메뉴판의 윤곽만 머릿속에 넣은 채 오후 여섯 시쯤 가볍게 걸어갔다. 그런데 문 앞에 붓으로 쓴 듯한 안내문 하나가 걸려 있었다. ‘만석’. 그 두 글자가 얄밉게도 공손했다. 문틈 사이로 들여다본 가게 안은 정말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나는 그날의 첫 패배를 인정하고, 순순히 2순위 주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음 날은 전날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일부러 애매한 시간인 오후 네 시에 찾아갔다. 따뜻한 국물로 잠깐 몸의 톱니를 맞추고 싶었고, 그 단정한 온기가 오늘의 나를 조금 더 느슨하게 풀어줄 것 같았다. 그런데 또다시 문 앞에는 같은 붓글씨가 붙어 있었다. ‘만석’. 어제의 글씨가 오늘의 내게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게 안을 보니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이상하게도 구석에 두 자리가 비었다. ‘만석’인데 ‘빈 자리’라니. 나는 납득이 되지 않는 마음을 질문으로 바꿔보기로 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주방 쪽에서 손님 응대를 맡은 듯한 직원 한 분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서툰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저 자리에 앉아도 되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짧고 단단했다. 예약석이라는 말. 나는 약간 투정 섞인 목소리로 “그럼 도대체 언제 먹을 수 있냐”고 물었고, 직원은 오늘은 이미 모든 시간대 예약이 끝났지만 다음 날 낮 시간에 공석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오후 두 시로 예약을 잡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가게는 전화를 하거나, 나처럼 직접 와서 시간을 잡는 식으로 예약을 받는다고 한다. 여행자에겐 불친절할 수도 있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현지인 편향’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또 다음 날 오후 두 시, 나는 이제야말로 당당하게 그 오뎅가게로 향했다. 이번에는 출입문에 ‘만석’ 대신 ‘공석’이라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첫날부터 이 시간에 그냥 워크인으로 왔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이 잠깐 스쳤지만, 문을 여는 순간 그런 생각은 곧 사라졌다. 어제 나를 돌려세웠던 직원이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안내했다. 여행객은 나와, 조금 늦게 들어온 대만 커플뿐. 아직 한 점도 먹지 않았는데 성취감이 올라왔다. 이게 뭐라고.


<오뎅 마루코메>는 2021년 덴가차야 역 앞에 오픈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카운터만 있는 ㄷ자 자리와 풀오픈 키친, 그리고 커다란 오뎅냄비가 먼저 인사를 하는데, 재료에 따라 ‘보통 육수’와 ‘진한 육수’를 나눠 끓인다는 설명을 읽는 순간 마음이 먼저 데워졌다. ‘예약이 어렵다’는 말이 따라붙는 이유는 결국 만석에 가까운 풍경과, 냄비 앞에서의 손놀림이 마치 작은 무대처럼 유려하기 때문일 테고, 그런 태도는 뒤늦게 ‘이자카야 백명점(2025)’ 같은 타이틀로도 확인했다.


나는 첫 접시를 무조림과 맥주로 시작했다. 이걸 먹으면서 메인 단계를 구상했다. 여덟 가지 안주가 한 접시에 나오는 메뉴를 추가 주문했다. ‘8 kinds of oden set’의 메뉴 구성은 이러했다. 정통 오뎅의 골격인 ‘무, 타마고(삶은 달걀), 아쓰아게(두부튀김), 시라타키(곤약면), 치쿠와, 규스지(소힘줄)가 한 접시에 나왔다. 그리고 이어서 찐감자, 제철 잎채소, 슈마이(고기딤섬)으로 차려졌다. 중간중간에 옆 테이블을 힐끗 보면서 같은 거 달라면서 주문 방식을 이어갔다. 여행자의 주문은 종종 ‘언어’가 아니라 ‘눈치’로 완성된다.

술은 사케로 시작해 고구마 소주를 종류별로 옮겨갔다. 특히 사장님이 추천하는 방식은 특이했다. 오뎅 육수에 사케를 섞어 마시는 ‘다시와리’는 ‘왜 이게 이렇게 술이 되지?’ 싶은 속도로 목을 타고 내려갔다. 옆 테이블의 일본 아저씨가 혼자 주류 메뉴판을 보며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 그는 내가 무슨 사람인지 묻지도 않은 채 자기가 마시던 사케를 나눠주었다. 작은 잔을 건네는 그 손짓이, 낯선 도시에서의 ‘환대’라는 단어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장면 같았다. 우연히 그가 내가 쓰고 있던 한신 타이거스 모자를 알아보고, 자신도 한신 팬이라며 더 반가워해주었을 때 나는 웃었다. 스포츠는 참 이상하다. 학연도 지연도 혈연도 아닌데, 그 셋과 비슷한 힘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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