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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 | 홍어의 본고장에서 고소함을 만나다

나주 영산포 <강변홍어>








4월, 전남 나주는 유채꽃으로 물든다. 나주 시내를 벗어나 영산강 방향으로 향하면, 강변은 온통 황금빛 물결이 된다. 꽃잎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마치 강물이 잠시 꽃으로 변해 흐르는 듯하다. 그 강변을 따라 걷다 다리를 건너면, 공기부터 달라진다. 저 멀리, ‘홍어’라는 이름을 간판에 새긴 식당들이 모여 서 있다. 좌표를 찾을 필요도 없다. 향이 아닌, 이름이 먼저 길손을 이끈다.


다리를 건너자 근대의 시간이 그대로 박제된 건물이 시선을 잡아끈다. 이곳이 바로 <타오르는 강 문학관>. 영산강과 그 강을 따라 살아온 나주·영산포 사람들의 역사와 한(恨)을 그린 대하소설 「타오르는 강」을 모티브로 한 공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나주 지역 대지주였던 일본인 구로즈미 이타로의 가옥이었다. 낯선 양식의 건물과 민중의 이야기가 만나, 시간과 감정이 겹겹이 쌓인 체험을 선사한다. ‘홍어의 도시’에 와서 이런 건축물에 발길을 붙잡힐 줄은 몰랐다.


그러나 오늘의 목적은 분명했다. 바로 홍어다. 나주 영산포는 예로부터 영산강 수운의 중심지였고, 서해와 내륙을 잇는 교역의 심장이었다. 조선시대 이후, 전남 해안에서 잡힌 홍어는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영산포에 도착했다. 냉장 시설이 없던 시절, 도착 무렵이면 이미 자연 발효가 진행돼 독특한 향과 맛이 완성됐다. 이 ‘우연의 발효’가 영산포 홍어의 명성을 만들었다. 고려 말부터 600년 넘게 이어진 흑산도 홍어의 집결지이자, 발효라는 시간 예술의 무대였던 셈이다.


홍어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대소사가 있는 날, 마을은 손님들에게 홍어를 내놓았다. 잘 삭힌 홍어, 삶은 돼지고기, 묵은 김치가 한 자리에 어우러진 ‘홍어삼합’은 이 고장의 손맛과 풍속을 담은 의식 같았다.

나는 그 의식을 아직 완전히 통과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삭힌 홍어는 여전히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조금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관광객이 몰려드는 대형 식당 대신, 동네 사람들이 편히 들락거리는 작은 곳을 찾았다. 식당 앞에서 15분간 ‘관찰’을 하고, 최종 선택한 곳은 <강변홍어>였다.


저녁 여섯 시, 한산한 식당에 들어가 1인 정식을 주문했다. 홍어삼합, 생홍어애, 홍어애탕이 차려졌다. 막걸리도 빼놓지 않았다. 11년 전, 한국에 오래 산 핀란드 누나가 “삭힌 홍어는 막걸리와 함께라야 한다”고 했지만, 그때 나는 막걸리가 있어도 홍어를 입문하지 못했다. 이번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다시 막걸리를 옆에 두었다.


첫 젓가락은 싱싱한 홍어애였다. 극한의 저항감이 올 거라 예상했지만, 고소함만이 입안에 번졌다. ‘뭐지?’ 싶어 한 점 더 집어 넣었지만, 코끝을 찌르는 그 향은 전혀 없었다. 주인장에게 물으니 웃으며 말했다.

“그건 생아구예요. 삭힌 게 아니라 바로 잡아온 거라 그래요.”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지금껏 삭힌 홍어만 먹어왔던 것이다. 팔리지 않은 홍어는 저장을 위해 삭힐 수밖에 없으니, 신선한 생홍어를 맛보려면 이렇게 원산지에 와야 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들이 하나같이 “생홍어 있나요?”를 묻는 이유도 알았다.

영산강의 봄빛 속에서, 나는 홍어에 대해 새로 배웠다. 발효의 깊은 바다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갓 잡은 바다의 숨결 역시 그 자체로 완벽했다. 노란 강변에서 시작된 하루가, 한 점의 홍어로 내 미각과 기억 속에 길게 번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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