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사카 | 회색 숲에 놓인 ‘표정의 장치’

일본 오사카 ‘푸른 사과’ 조형물






도시의 조형물은 대개 유령처럼 취급된다. 바쁜 발걸음은 그것들을 ‘거기 있는 무엇’으로만 남겨 둔 채 미끄러져 지나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혼자 걷는 날이면, 나는 눈에 띄는 작품 앞에서 속도를 늦춘다. 작품에 다가가 이름표를 찾고, 작가의 이름을 한 번쯤 검색해 본다. 낯선 사람의 명함을 받아 든 뒤, 그 사람의 세계를 조심스레 더듬어 보는 것처럼.


서울 도심, 마천루가 숲을 이루는 건물 사이에서 자주 마주치는 작품이 있다. 하늘빛의 큰 동상이 고요히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조형물—유영호 작가의 ‘인사하는 사람’이다. 그 몸짓은 단순한 예절의 재현이 아니라 관계의 시작을 붙잡아 두는 장면처럼 보인다. 고개를 숙이는 찰나에 담긴 것은 ‘내가 먼저’가 아니라 ‘당신을 먼저’라는 선택, 경계와 오해를 풀어 내는 작은 용기다. 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마음의 자세다. 도시는 자주 사람을 날카롭게 만들지만, 이 조형물은 그 날카로움 앞에 살짝 물을 뿌린다. 한 번 고개를 낮추는 행위가, 인간관계 와의 거리를 다르게 재는 자가 되기도 한다는 듯이 말이다.


오사카에서도 비슷한 ‘표정의 장치’를 만난 적이 있다. 안도 타다오의 ‘푸른 사과’가 놓인 곳들—나카노시마 공원 안 어린이 도서관 앞, 그리고 우메키타 공원 중심의 ‘문화공간 VS.’ 앞 잔디광장이다. 특히 VS. 앞의 ‘푸른 사과’는 전시를 위한 설치였지만,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오브제라는 사실이 오히려 상징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사진 속 기념품이 아니라, ‘아직 덜 익은 마음’을 한복판에 두려는 선언처럼 보였다. 왜 빨간 사과가 아니라 푸른 사과일까. 완숙한 안정보다 미숙한 가능성을 택하겠다는, 성장의 결을 지우지 않겠다는 고집—사무엘 울만의 「청춘」이 떠올리는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다. 그러니까 그 사과는 익어야만 가치가 생기는 과일이 아니라, 익지 않아서 더 빛나는 마음의 은유다. 젊음이란 나이가 아니라 태도라면, 푸른 사과는 도시에 붙여 둔 하나의 약속이다.


이 두 작품을 떠올리면, 도심 속 조형물이 주는 의의가 조금 또렷해진다. 조형물은 확실히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한다. 회색 건물 사이를 걷다 낯선 형태와 색을 마주치는 순간, 우리의 시선은 잠깐 멈추고 마음은 숨을 고른다. 도시는 효율의 문장으로 쓰인 세계라서, 우리는 종종 쉼표 없이 달린다. 그때 조형물은 문장 한가운데 찍힌 쉼표가 된다. 삭막한 풍경에 ‘예쁜 장식’을 얹는 일이 아니라, 도시의 속도에 작은 구두점을 새기는 일이다. 공공의 위로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이렇게 사소한 멈춤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기분 전환’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도시를 기억하게 하는 표지—랜드마크가 되어, 길과 장소를 머릿속에 정리하는 ‘내면의 지도’를 돕는다. 여행자에게 반드시 도움이 되는 표식이다. 우리는 건물의 높이보다도 어떤 장면으로 도시를 기억하니까. 동시에 조형물은 사람들을 한곳으로 불러 모아 서로의 시선을 겹치게 한다. 누군가는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잠시 서서 읽고, 누군가는 그냥 지나치면서도 마음의 모서리를 조금 둥글게 한다. 그렇게 작품은 동네의 이야기를 새로 쓰는 계기가 된다. ‘인사하는 사람’이 관계의 문을 열어 주고, ‘푸른 사과’가 가능성의 시간을 붙잡아 두듯, 도심의 조형물은 도시를 ‘살아 있는 곳’으로 만든다.


건물의 숲에 길을 내는 것은 결국, 사람의 태도와 시선이다. 우리가 조형물 앞에서 잠깐 멈출 때, 도시는 단지 ‘사는 곳’이 아니라 ‘서로에게 말을 거는 곳’이 된다—회색 숲 한가운데, ‘표정의 장치’가 놓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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