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사카 | 네온의 강, 늦게 도착한 마음

오사카 도톤보리







그 도시에서 가장 많이 찾는 곳을 굳이 먼저 찾진 않는다. 하물며 가보지 않고 여행을 마무리한 적도 있다. 서울의 명동, 도쿄의 긴자거리, 뉴욕의 타임스퀘어처럼 ‘꼭 가줘야 하는’ 곳은 이상하게 마음이 덜 움직인다. 천만 관객 영화도 애써 예매해 보고 싶지 않은 나이기에. 그렇다고 병적으로 싫어하는 건 아니다. 여행 중 어차피 지나가야 하는 때가 생기거나 기사를 써야 하면, 나는 그곳을 기계처럼 통과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조금은 놀란다. 대체로 사람들 모두가 좋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서, 막상 그 광경을 눈으로 확인하면 소름이 돋고 탄성이 새어 나오기 때문이다. 다만 그 감흥은 늘 ‘내가 발견한 것’이라기보다 ‘이미 검증된 것’에 대한 뒤늦은 고개 끄덕임에 가깝다.


도시의 ‘대표 얼굴’은 유명하다는 말이 주는 안도감 뒤에 이미 누군가의 시선과 문장이 먼저 다녀간 자리가 겹겹이 포개져 있고, 사진 속 각도와 같은 각도에서 서야만 할 것 같은 얇은 의무가 깔려 있다. 그곳에서는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기보다 ‘봐야 하는 것’을 재빨리 확인하고 지나치기 쉽다. 여행이 체험이 아니라 점검표가 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지도를 접고 군중의 흐름에서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선다. 가장 유명한 곳은 늘 같은 속도로 빛나지만, 이름 없는 길은 그날의 날씨와 시간에 따라 표정이 달라진다. 우연히 마주친 작은 풍경은 ‘나만의 기억’이라는 여백을 남겨 준다.


오사카에서도 그 고집은 습관처럼 작동했다. 난바거리와 도톤보리는 여행 일정의 마지막 날에 넣었다. 도심을 지나가며 ‘글리코 사인’을 스치듯 보긴 했지만, 수많은 인파 속에 내 여정을 지체시키고 싶지 않았다. 유명한 곳은 언제나 거기 있으니, 나는 늘 ‘나중에’라는 서랍에 그것을 넣어둔다. 그렇게 마지막 날, 해가 저물 무렵 도톤보리 강에 당도했을 때, 강변은 관광버스가 도열한 무대처럼 번쩍였다.


난바역 지하도를 따라 또다시 도톤보리 강으로 걸어가는 동안, 나는 내가 피하던 것들—대표 얼굴, 유명함, 군중—을 끝내 마주치러 가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았다. 계단을 올라 지상으로 나오자마자, 오사카는 마치 숨겨 두었던 심장 박동을 내 귀에 직접 들려주듯, 사람과 빛과 소리의 파도를 한꺼번에 밀어 넣었다. 간판들은 서로 더 밝게 웃어 보이려는 듯 겹겹이 빛을 쏟아냈다. 강을 따라 걷는 길 위로 네온은 물결처럼 번졌다. 글리코 간판 앞에서는 ‘여기가 그곳’이라는 표정의 카메라들이 동시에 보였다.


집에 들어가기 전, 비가 내렸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도톤보리 강을 가로지르는 크루즈 줄이 눈에 띄게 줄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원에게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요?” 하고 물었더니, 다음 시간대에 탈 수 있으니 탈거면 서둘러 달란다. 나는 자발적 호객행위에 당한 사람처럼 얼른 티켓을 끊고 탑승했다. 배에 오르기 전까지도 혼자 속으로 갑론을박을 했다. ‘아까 걸어서도 볼 수 있는 광경을, 왜 돈을 내고 또 볼까?’라는 질문과 ‘그래도 한 번쯤은’이라는 변명이 엎치락뒤치락했다.


그런데 막상 몸을 싣고 나니 나는 어린애처럼 사방을 둘러보며 카메라에 광경을 담고 있었다. 강 위에서 본 네온은 걷는 동안 보던 네온과 달랐다. 물은 빛을 한 번 더 구겨서 보여주었고, 흔들림은 풍경에 서정을 입혔다. 비는 도시의 과장을 조금 씻어냈고, 그 덕분에 유명한 것은 더 이상 부담이 아니라 한 편의 공연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때 알았다. 누구나 좋아하는 여행지는, 다 이유가 있다고. 다만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남들이 먼저 본 것’을 미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늦게 도착한 마음으로도 기꺼이 바라보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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