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도시에는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 걸어 올라가야 도달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체력과 낭만을 모두 갖춘 사람만이 정상에서 만날 수 있다. 낭만이 두둑한 사람은 오를수록 소진되는 체력에 반감이 덜하다.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채워질 낭만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도시의 전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은 온통 웃음뿐이다. 이를 한발짝 뒤에서 바라보는 장면도 꽤 훈훈하다. 도시 전경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표정으로 타인의 낭만을 공유한다.
포르투의 어느 높은 언덕 위, 바람이 살짝 스치는 오후에 도시를 내려다보면, 마치 오래된 포도주를 한 모금 머금은 듯한 감정이 마음 깊숙이 번져온다. 도루강은 마치 도시의 기억을 흐르듯 지나가고, 강을 따라 붉게 물든 기와지붕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이 풍경은 정돈되지 않은 아름다움, 조금은 삐뚤고 낡았지만 그래서 더욱 정감 가는 얼굴을 닮았다. 어쩌면 포르투는 사랑에 실패한 시인의 마음처럼, 다 말하지 못한 말들을 풍경 사이에 숨겨두고 조용히 사람들을 기다리는 도시인지도 모른다.
포르투는 기억과 몽상의 도시다. 시간을 거슬러 간 듯한 골목과 그 위를 감싸는 푸르스름한 안개, 그리고 저녁이면 황금빛으로 물드는 강물은 모두 하나의 긴 문장처럼 이어져 있다. 언젠가 사랑했던 이와의 대화처럼, 혹은 마음속 어딘가에 묻어둔 오래된 시처럼. 포르투를 내려다보는 그 순간은 단지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 조각을 어루만지는 일이다. 그렇게 포르투는 내 안에서 천천히, 하지만 깊게 스며든다. 낭만이란 결국, 사라지는 빛 속에서 다시 그리워하게 될 장면을 눈앞에 마주하는 일이 아닐까. 그리고 그 장면은, 오늘 저 언덕 위에서 바라본 포르투일 것이다.
리스본의 언덕 위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보는 순간,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붉은 기와지붕이 겹겹이 쌓여 언덕을 이루고, 저 멀리 테주강은 잔잔한 숨결로 도시를 어루만진다. 이곳에 서면 리스본은 단순한 수도가 아니라 하나의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오래된 건물들의 벽에 스민 수많은 사연들, 전차의 철컥이는 소리에 실린 사람들의 일상, 하늘 아래 고요히 흐르는 강물까지—모든 것이 어쩐지 시처럼, 노래처럼 다가온다.
상 조르제 성벽 위에 기대어 있으면, 도시 전체가 나지막한 숨결로 말을 건네는 듯하다. 어쩌면 리스본은 사랑을 오래 기다려온 연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가가면 조심스럽고, 한참을 머물러야 그 깊이를 알 수 있는 도시.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풍경은 정갈하게 정돈된 그림이 아니라, 불완전하지만 진심 어린 한 편지 같아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편이 따뜻해진다.
그리고 감정은, 그 모든 장면 위로 부드럽게 스며든다. 일상의 소란을 잠시 접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속마음을 조심스레 펼쳐 보인다. 그렇게 이 도시는 여행자에게 ‘그리움’이라는 이름의 감정을 선물한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를 향한 막연한 동경이자, 이미 지나가버린 어떤 순간에 대한 애틋한 회상처럼. 리스본을 내려다보는 그 시간은 결국, 도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어떤 풍경을 마주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토록 무한한 낭만을 안겨다주는 전망 좋은 곳을 아니 오를리 없다. 다 오르기 전에, 도시 전경이 말해줄 해답은 알 수 없다. 꼭 답을 얻고자 오르는 것도 아니다. 그런 집착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면, 결국 정상에 오르지 못한다. 또한 모든 사람에게 같은 답을 제공하지도 않는다. 신기하게도 그 해답을 받은 사람들은 일관되게 평온하다. 일일이 물어보지 않아도, 아니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치유와 안온이라는 매듭을 전부 표정에 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