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황금마차>
우산을 쓰고 2차 장소로 이동했다. 비는 종종 사람이 감추고 있던 성격을 드러내는 날씨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별말 없이 따라왔다. 다른 대안이 없기도 했고, 무엇보다 ‘어디 갈지 찾는 수고’를 오늘은 지불하고 싶지 않아 보였다. 내가 고른 목적지를 그저 수락한 것이다. 그런데 5분이 지나자 투정이 시작됐다. 조금만 가면 된다더니 도대체 어디까지 가냐고. 예전에 내가 비슷한 경로로 사람들을 끌고 다닌 전력이 있어서인지, 과거의 불만이 현재의 비를 타고 더 빠르게 번졌다. 그리고 눈치도 없이 비는 더 굵어졌다.
그 와중에 나는 한 가지 변수를 품고 있었다. 말할 수 없는 사실, 정확히는 말하지 않기로 한 사실. 웨이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사소한 정보일지 모르지만, 술자리의 행선지에는 이상한 도덕이 있다. 기대를 관리하는 사람은 언제나 책임을 떠안는다. 그리고 나는 오늘, 그 책임을 우산 속에 숨기기로 했다.
우리는 국회의사당역 근처에서 출발해 여의도공원을 지나 여의도역도 지나쳤다. 비 때문에 길이 더 길게 느껴졌다기보다, 목적지를 모르는 걸음은 원래 늘 과장된다. 친구들은 마침내 폭발했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데, 상호명이라도 대.” 나는 민중의 봉기를 막기 위해 2차의 이름을 공개했다. <황금마차>.
여의도역에서 아파트 단지 쪽으로 10분을 더 가야 한다는 사실을 친구들이 알아채는 순간, 얼굴에 ‘배신’이라는 단어가 번졌다. 하지만 이미 많이 왔다. 그리고 딱히 대안도 없었다. 우리는 지나온 길이 만들어낸 강제의 합의 위에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가는 수밖에 없었다. 포차가 있는 건물 1층으로 들어서는데, 간판 옆에 웨이팅 줄이 보였다. 그때, 내 안의 죄책감이 빗물처럼 서늘하게 흘렀다.
밤 9시가 다가오자 여의도 퇴근길의 공기가 조금 느슨해졌다. 사람들은 이 포차를 ‘황마’라는 암호 같은 약칭으로 부른다고 했다. 나도 예전에 누군가의 추천을 따라왔다가, 그 뒤로 즐겨찾기로 저장해 둔 곳이다. 여느 여의도 주점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층고가 낮고, 말소리가 부딪혀 웅성웅성한데도 이상하게 술맛이 오른다. 여의도 직장인들이 1차 다음 2차로 꼭 찾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들어가기 전부터 알 수 있었다.
홀에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장 차림의 20대들이었다. 좋은 대학을 나와 원하는 직장에 취직했을 법한 얼굴들. 어떤 이들은 사원증을 아직 목에 건 채 술을 마셨다. 우리는 매일 다른 문을 통과하지만, 사실은 늘 같은 사람으로 돌아온다. 포차의 문턱은 그 사실을 확인하는 작은 국경 같았다.
드디어 들어갈 차례가 됐다. 메뉴판 바로 아래쪽 자리에 안내받았다. 나는 예전에 먹었던 대로 주문하겠다고 했다. 친구들은 이제 반항할 타이밍을 놓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앉자마자 건네진 뜨끈한 오뎅 국물은 기다림마저 안주로 바꿔놓았다. 비 맞은 몸에서 빠져나간 온기가, 그릇 하나를 통해 되돌아오는 느낌. 그리고 테이블의 중심을 단단히 잡은 건 이 집의 시그니처라는 ‘오돌뼈짜장밥’이었다. 숟가락으로 연신 밥을 볶으며, 나는 계란후라이를 얹어 먹으라는 팁을 또 잊었다. 짭조름한 짜장과 오돌뼈의 식감은, 원래부터 맛있어야만 했던 조합처럼 자연스러웠다. 계란말이, 해물파전, 오징어숙회 같은 포차의 정석들이 뒤를 받쳐주었다. 두툼하고 투박한 매력. 세련되지 않아서 오히려 믿음이 가는 음식들이다.
황금마차는 1991년부터 이어져 온 실내포차다. 우리 어머니와 연배가 비슷한 사장님이 거의 혼자 음식을 만드셨다. 홀은 여성 두 분이 담당하셨는데, 서로 특별한 대화가 없어도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머니와 두 따님이 운영하는 것 같았다. 중간중간 주방과 홀에서 주고받는 말 속에 ‘엄마’라는 단어가 스치듯 들리기도 했다.
주문은 끊이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성급해지지 않았다. 본인만의 속도로 조리를 이어가셨다. 그 속도가 신기하게도 가장 효율적이었다. 바쁠수록 빨라지는 세상에서, 이곳은 바쁠수록 흔들리지 않는 속도를 고수했다. 서빙과 응대도 늘 그랬다는 듯 루틴대로 매끄럽게 흘러갔다. 주방과 홀이 시끄러우면 손님 입장에서도 불편한데, 이 포차는 전혀 그럴 틈이 없었다. 그걸 보며 생각했다. 술집이란 결국, 사람을 취하게 하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을 안정시키는 방식을 가진 공간일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