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여주 <술아원> 양조장
aT센터 행사장 술아원 부스에서 이야기가 나왔다.
“올해도 크리스마스 파티해야지. 넌 아가씨 없으니까 또 와야 돼.”
그 말은 농담처럼 가벼웠지만, 이상하게도 문장 끝에 마침표가 찍혀 있었다. 나는 어느새 술아원 크리스마스 파티의 ‘디폴트’가 되어 있었다. 빠져도 되는 옵션이 아니라, 설정값이었다.
이 파티의 기원은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교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이브에 여주 여행을 떠났고, 그 길 끝에서 술아원을 만났다. 다음 해에는 술아원 식구들과 함께 조촐하게 다시 모였고, 2024년부터는 아예 공지사항을 올려 기획하게 되었다, 사적인 추억이 공동체의 연례행사가 되어 버렸다.
올해 술아원은 눈으로 덮여 있지 않았다. 늘 크리스마스에는 눈이 내리거나, 눈이 내린 흔적이라도 남아서, 나는 해마다 그 장면을 사진에 담았다. 겨울의 흰색은 마치 ‘올해도 무사히 살았다’는 도장 같았다. 그런데 이번엔 눈이 없었다. 대신 승규가 테이블과 커트러리를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마련해두었다. 빨강과 초록이 번갈아 놓인 소품들, 작은 장식들. 술아원의 겨울이 눈 대신 사람의 손으로 꾸며진 셈이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승규에게 ‘엄마와 함께 보내는 크리스마스 이브’는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그러면서도, 이 전통이 술아원에서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술아원은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를 하는 국내 유일의 양조장’이다. 술은 원래 축제의 언어이고, 양조장은 그 언어가 태어나는 산실이니까.
올해 행사의 룰은 간단했다. 각자 술 한 병씩 가져오기. 누가 정확히 몇 명 왔는지는 모르지만, 그날 밤 30병이 넘는 술이 사라진 것 같았다. 병들은 테이블 위에 줄지어 서서 저마다의 사연을 내놓았다. 어느 정도 취기가 돌자, 조명이 줄어들고 클럽 음악이 홀을 채웠다. 파티는 순간 ‘발효’에서 ‘증류’로 넘어갔다. 조용히 익던 대화가 뜨겁게 끓기 시작하고, 말들은 증기가 되어 천장으로 올라갔다. 2030 세대들이 홀의 중심을 차지했고, 진희 누나를 포함한 40대 이상은 기가 빨리자 변두리로 빠져 조용히 술자리를 이어갔다.
다음 날, 체크아웃을 하고 칼국수로 해장하기로 했다. 그리고 무척 당연하다는 듯이 해장술도 대령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미래가 다가올 거라는 건, 그때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간단히 해장술 한 잔 하고 집에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진희 누나의 마인드는 달랐다.
“오늘 저녁까지 마셔야지.”
그녀의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빈말이 아니라 선언이다. 그리고는 유명한 복어집이 있다며 2차 장소를 낙점했다. 마침 아들과 친구들도 합류했다. 불쏘시개에 불이 옮겨 붙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복어집에서는 6명이 되었다. 메뉴를 주문한 뒤, 우리는 ‘빨뚜’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빈 병과 뚜껑이 트리가 되고, 그 트리는 우리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모양이 되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낮에 집에 가는 건 글렀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람이 경계를 하면 그나마 통제가 된다. 하지만 그 벽이 허물어지면, 몸은 흐르는 물에 맡겨지고 행방은 묘연해진다. 어디까지 갈 것인가. 나는 그 질문을 하고도, 답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오후 3시 반, 다시 택시를 불렀다. 마치 연어처럼 돌아돌아 다시 술아원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건—어젯밤의 거대한 흔적들. 우리는 전쟁터를 치우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모두가 일사분란했다. 50분 만에 얼추 정리가 마무리되었다. 홀 중앙에 마지막 용사들을 위한 테이블 하나만 놓고 다시 술자리를 만들었다. 몸은 지쳤는데, 도파민은 죽지 않았다. 소박하니 진짜 크리스마스 파티 같았다.
다시 날이 저물었다. 이건 사실 미친 짓이다. 20대 청춘도 아니고, 술을 1박 2일 꽉 채워 마신다는 건 이젠 도박에 가깝다. 몸은 정직하게 경고를 보내는데, 마음은 늘 과거를 믿는다. “예전에도 했잖아.”라는 거짓말을.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이렇게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