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 유리벽의 도시에서 취향저격한 LA 갈비

여의도 <심경희라라랜드>







내가 본 여의도는 ‘실내’로 작동하는 도시다. 밖에서 보면 거대하고 단단한 빌딩 숲인데, 그 단단함은 사실 유리벽 안쪽에서만 비로소 숨을 쉰다. 여의도의 하루는 출입구와 로비 통과의 연속이다. 아침이면 증권가와 금융사 사무실로 사람들이 한꺼번에 빨려 들어가고, 점심엔 정장을 입은 발걸음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속으로 흩어진다. 맛집이나 주점도 대개 길가의 간판보다 로비를 지나 안쪽에 숨어 있어, ‘어디서 먹을까’는 곧 ‘어느 건물로 들어갈까’로 바뀐다. 퇴근 무렵엔 높은 빌딩들이 하루의 피로를 반사하듯 불빛을 켜고, 사람들은 지상보다 지하 통로와 연결된 상가를 따라 움직인다. 큰 도로 하나만 건너면, 아파트 주거지역의 단정한 창들이 분위기를 전환시킨다.


그런 여의도는 내가 생활하는 마포에서 지척이다. 한강 다리만 건너면 된다. 가까운 곳이 꼭 자주 가는 곳은 아니라는 것을, 이 동네는 유난히 잘 증명한다. 여의도에 IFC몰이나 더현대서울 같은 ‘약속의 랜드마크’가 없던 시절, 여의도에서 회사생활을 할 때조차 회식 자리나 저녁 술자리는 영등포역 근처나 마포역, 공덕역으로 잡히곤 했다. 여의도는 ‘근무만 하고 떠나야 하는 동네’로 인식되었다. 퇴근벨이 울리면 그곳은 곧장 비워야 할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나는 은근히 여의도 맛집이나 주점에 관한 지식이 많지 않다. 다만 최근 몇 년 동안 지인이 운영하는 곳이 생기고, 여의도로 주류 배달을 하며 점심을 먹게 되면서부터 여의도의 상권을 ‘몸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고 싶은 곳들을 즐겨찾기에 쌓아두었다.

나는 LA갈비를 외식으로 먹은 기억이 거의 없다. 명절 때 조부모집에서 친척들과 함께 먹던 고기, 그러니까 내게 LA갈비는 음식이라기보다 풍경이었다. 명절 특유의 소란, 대화와 잔소리의 교차, 그 사이에서 달큰한 양념 냄새가 옷에 배어드는 기억. 그래서인지 LA갈비는 언제나 “집”을 닮아 있었고, ‘식당의 메뉴판’과는 쉽게 만나지지 않았다.


즐겨찾기한 여의도 맛집 중에 LA갈비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이름부터가 평범해 보이지 않는 곳, <심경희라라랜드>. 친구들에게 제안할 때도 확신이 없었다. 다행히도 메뉴가 생소하다는 이유로 반색하는 표정들이 돌아왔다. 나는 종종 상호명에 사람 이름이 들어가면, 사장님의 취향이 과하게 전면에 나서서 업장 분위기나 메뉴 스타일에서 호불호가 갈리기 쉽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집의 이름은 나르시시즘이라기보다 초대장처럼 들렸다. “라라랜드”라는 단어가 가진 허구의 밝음, 현실의 회색을 잠깐 비껴가는 뒷골목의 환기 같은 것. 여의도의 건물 속에서 라라랜드라니—그 자체로 작은 반항이었다.


가게는 밖에서부터 레트로를 예고하듯 둥글둥글한 간판과 디테일로 시선을 끌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90년대의 공기를 끌어온 인테리어가 맞이한다. 델몬트 병에 담긴 보리차, 돌판 같은 소품들—촌스럽다기보다 ‘기억의 물성’이 있는 것들이었다. 회식과 데이트의 분위기가 동시에 가능한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메뉴는 56시간 숙성한 우대 LA갈비를 중심으로 식사와 사이드가 촘촘히 붙어 있었다. ‘고기 한 판에 끝’이 아니라 ‘고기와 곁들의 조합’으로 구성되었다. 여의도에서 식사는 늘 시간표처럼 진행되기 쉬운데, 이 집에서는 식사가 장면처럼 구성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장면은 갈비가 주방에서 초벌되어 철판째 나오고, 테이블에서 소스를 ‘쏴’ 부어 주는 순간이다. 그 순간 달큰한 향이 확 올라오며 분위기가 한 번 더 달아올랐다. 신라면 투움바 리조또는 자극적이면서도 중독적인 맛이다. 이 또한 퍼포먼스가 예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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