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에서 끝난 술지리의 허무함
코펜하겐 여행 중에 영화 한 편이 생각나서 시내를 돌아다니던 중, 시네마티크 CINEMATEKET란 건물에 시선이 멈췄다. 문을 밀고 들어가 스캔하니, 이곳은 영화를 연구하고 상영하는 곳이다. 상업 영화보다는 작품성 있는 독립영화들이 그 주체다. 현재 상영하는 기획전을 살펴보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이름이 있었으니,
'박, 찬, 욱'
가장 윗줄에 올려진 박찬욱의 이름이 이렇게 빛나고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마치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듯, 20분 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스토커>가 상영을 기다리고 있다. 얼른 티켓팅을 하고 상영관에 입장해 영화를 보는데...
5분 정도가 지났을까. 상영관 안이 암전 되더니 영화가 멈췄다. 영상사고였다. 금방이라도 다시 틀어줄 듯했는데, 영사기의 고장으로 결국 환불 조치 받았다. 뭔가 찝찝한 이 기분. 아직도 스토커의 전씬을 보지 못 했다. 그래도 그 영화의 5분은 또렷이 기억난다.
때론 영화를 끝까지 봐도 기억이 남지 않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위의 사례처럼 중간에 영화가 끊겼을 때, 영화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고 아귀가 맞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인과관계를 맞추려는 본능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건 마치 술자리가 1차에서 마무리된 것 마냥 허무하다. 분위기를 타고 있는데, 외부적인 요인이나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로 인해 술자리가 파해지는 경우. 1차만 끝나고 버스나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으로 집에 가는 기분은 정말 찝찝하다. 1차를 마치고, 오늘 술자리의 클라이맥스를 이미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