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15.75리터. 가장 큰 배낭이었다. 유럽 여행 1년을 준비하면서 고른 놈이다. 짐을 넣는 도구보다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집 정도의 역할을 부여했다. 내 방의 축소판을 넣고 유랑하리라는 포부. 달팽이를 표방한 여행가였다.
만난 지 4년 차. 내 것이지만, 열어본 기억이 없는 지퍼가 있으며, 존재조차 모르는 주머니도 있다. 길게 늘어진 끈에는 다 이유가 있을 텐데 여전히 쓰임의 방향이 오리무중인 것도 있다. 심지어 포화상태로 짐을 채워 본 적조차 없다. 서먹하고 어색하다. 어깨에 얹어진 안락함도 부족하다. 배낭 멘 뒷모습을 보니, 여전히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매번 고쳐 메지만, 밀당의 종지부는 언제까지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