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신트라 <페나궁전>
오전 일찍 신트라에 도착했다. 밤새 쌓인 안개는 도시 전체를 흐릿하게 감쌌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마치 꿈과 현실 사이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가이드 분은 첫인상부터 눈길을 끌었다. 예수님을 연상케 하는 긴 머리카락에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 화려한 말솜씨보다 오히려 그의 담담한 설명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가만히 귀 기울이다 보니 그의 이야기가 도시의 오래된 골목을 따라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신트라는 포르투갈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수도 리스본에서 가까우면서도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품고 있다. 산 속에 자리 잡은 이 작은 도시는 수세기 동안 왕들과 귀족들의 피서지이자 낭만의 상징이었다. 안개 낀 아침에 신트라 성이 보이지 않아 조금 아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하늘이 열리고, 감춰졌던 풍경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먼저 신트라 올드타운을 걸었다. 동화 속 마을처럼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좁은 골목마다 이어져 있었고, 그 안에는 지역 장인들이 만든 수공예품, 도자기, 그리고 작은 디저트 가게들이 사람들을 반겼다. 그곳에서 신트라의 명물인 ‘트라베세이루 Travesseiro’라는 페이스트리를 맛보았다. 부드러운 커스터드와 아몬드 크림이 입안에서 퍼지며 이 도시의 달콤한 인상을 완성했다. 근처 가게에서는 체리 리큐르 ‘진자 Ginjinha’를 작은 초콜릿 잔에 따라 팔고 있었는데, 단돈 1유로에 진하게 퍼지는 향과 달콤쌉쌀한 맛을 즐길 수 있었다. 한 모금 넘기고 나니 입안에 퍼지는 과일 향과 초콜릿의 조화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 다음으로 향한 곳은 페나궁전 Palácio da Pena이었다. 구불구불한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자, 마침내 숲 너머로 형형색색의 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동화 속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외관이었다. 노란색, 붉은색, 파란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고, 각기 다른 건축양식이 묘하게 섞여 있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고딕, 르네상스, 무데하르, 바로크 양식이 어지럽게 섞인 듯하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있는 그 모습은 신트라의 독특한 정체성을 상징하는 듯했다.
페나궁전은 19세기 중반, 페르디난드 2세가 건설을 시작하며 세워진 왕궁이다. 그는 독일 출신의 예술애호가로, 신트라에 머무는 동안 이 언덕 위 수도원의 폐허에 매료되어 직접 궁전을 설계하고 재건하는 데 참여했다. 낭만주의 건축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이 궁전은 단순한 왕의 거처가 아닌, 예술적 상상력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내부로 들어서면 시대를 초월한 예술품과 인테리어, 그리고 정교하게 조성된 정원이 이어진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대서양과 산맥의 조망은 보는 이의 숨을 멎게 만든다.
그 순간, 나는 신트라가 왜 그토록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안개 속에 감춰진 오래된 시간, 그리고 그 위에 덧칠된 색채와 예술. 신트라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대화를 나누는 장소였다. 그리고 페나궁전은 그 대화의 중심에서, 고요히 모든 것을 품고 서 있었다. 이제 나도 신트라가 아름다웠다고 다른 이에게 전달해줘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