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회장의 북토크와 사진전
2008년, 내가 대학원 휴학을 했던 시절이었다. 두산그룹이 우리 학교를 운영하던 학교법인을 인수했다. 학부 때만 해도 재단의 무능으로 학내 시위가 잦았던 학교였기에, 이제 좀 나아지려나 하는 기대가 반, 교육의 장이 기업 논리로 변질되는 건 아닐까하는 우려가 반으로 마음이 갈라졌다. 다만 발전이 워낙 더뎠던 터라, 저울추는 자연스레 기대 쪽으로 더 기울었다. 학생 신분으로 당장 피부에 닿았던 변화는, 지금 생각하면 꽤나 ‘지엽적’이고 또 선명하다. 학생회관 동아리방 앞에 처음처럼 소주(당시 두산주류) 박스가 켜켜이 쌓여 있었고, 학과 사무실 한쪽에는 두산베어스 야구장 초대권이 넉넉하게 놓여 있었다. 술과 두산 야구를 사랑하던 내게 그건, 누가 봐도 달콤한 ‘미끼’였다.
두산베어스와의 인연은 더 오래됐다.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아버지에게 받았던 ‘OB베어스 어린이 회원’ 카드. 아버지가 박철순의 배명고 선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덕분에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 팀만을 응원해왔다. 가끔 생각한다. 만약 그때 내 손에 MBC 청룡 어린이 회원 카드가 쥐어졌다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그렇게 한 팀을 오래 응원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두산’은 내게 기업이라기보다 습관처럼 몸에 밴 구호, 익숙한 응원가의 리듬 같은 것이었다. 요즘은 그룹 총수의 야구장 방문이라 하면 한화 이글스가 먼저 떠오르지만, 예전에는 두산베어스의 박용만 회장도 못지않게 야구장을 자주 찾아 선수단을 독려하던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의 경영 이력은 자세히 몰라도, ‘야구를 사랑하는 회장’이라는 인상만큼은 그 시절부터 내 마음 한쪽에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어느 날 ‘책방 무사’의 책방지기에게 연락이 왔다. 박용만 회장의 북토크가 열린다는 소식이었다. 내가 두산베어스 팬이라는 걸 알고, 야구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그 사실이 자연스럽게 드러났기에 책방지기는 내게 정보를 전해 주었다. 박용만 회장이 쓴 두 번째 산문집 <지금이 쌓여서 피어나는 인생>은 이미 완독한 상태였고, 북토크 소식도 얼핏 들었지만 외부 출장 일정이 겹칠 가능성이 있어 일찌감치 포기한 참이었다. 그런데 운 좋게도 다음 날 일정이 취소되었다. 닫혔다고 생각한 문이 다시 한 번 ‘툭’ 하고 열리는 것처럼, 남은 좌석에 내 이름을 넣을 수 있었다.
직접 마주한 박용만 회장은, 내가 상상하던 ‘기업 총수’의 이미지와는 결이 달랐다. 권위적인 분위기나 범접하기 어려운 아우라를 앞세우기보다, 누구나 편하게 말을 걸 수 있는 털털함이 먼저 느껴졌다. 과거에도 직급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고, 질문에 솔직하고 명확하게 답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왔는데, 그날 2시간 동안의 북토크는 그 평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조용히 증명했다. 그의 말투는 사람을 눌러 앉히지 않고, 대화를 앞으로 밀어 주었다.
산문집을 읽으며 내가 얻은 것도 결국 비슷한 결이었다. 이 책은 거창한 교훈을 들이밀기보다는, 일상의 순간들이 쌓여 결국 삶이 된다는 관점으로 흔들리는 시간을 건너는 현실적인 요령들을 건네줬다. 특히 화가 치밀어 오를 때 흰 종이에 속에 담아둔 말을 마음껏 적어 내려가면 분노가 풀린다는 이야기는 요즘 가끔 써먹는다.
북토크의 마무리 즈음, 그는 2026년 1월에 자신의 사진전이 회현동 ‘피크닉’에서 열린다는 예고를 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일정표에 메모해 두었다. 새해가 되자마자 검색을 해보니, 예상대로 전시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약속은 잊히기도 하지만, 어떤 예고는 씨앗처럼 마음에 남아 있다가 계절이 바뀌면 싹을 틔운다. 내게 그 사진전이 그랬다.
남산 방향 언덕을 따라 천천히 걸어 ‘피크닉’에 들어섰을 때, 여행지에서 우연히 작은 전시를 발견했을 때의 설렘이 먼저 찾아왔다. 박용만 회장의 사진전은 거창한 수식보다, 오래된 필름 냄새처럼 조용히 다가왔다. 기업의 총수라는 이름표를 잠시 내려놓고 사진작가로 서고 싶은 마음으로, 50여 년 동안 일상에서 건져 올린 장면들 중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남은 사진 80점을 꺼내놓았다고 했다. 설명이나 제목을 과하게 덧붙이지 않은 점도 좋았다. 말이 많아지면 사진이 흐려진다는 듯, 관객이 각자의 속도로 사진 속 ‘사람의 순간’을 만나길 바라는 태도처럼 느껴졌다.
렌즈가 향한 곳은 화려한 풍경이 아니라, 길모퉁이의 표정과 스쳐 간 뒷모습, 누군가 지나간 자리의 온기 같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사진을 찍을 때 붙들고 싶은 장면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낯선 도시를 걷다가 문득 마주치는, 사소하지만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 그 순간들을 내 해석을 담아 정지된 화면으로 남기는 마음을, 전시장 곳곳에서 주워 담았다. 그날의 나는 사진을 본 것이 아니라, 사진 속에 남겨진 ‘지금’들을 한 장씩 넘겨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