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호카곶>
서쪽 끝까지 왔다. 유럽 대륙의 가장자리, 대서양을 마주한 포르투갈의 <호카곶 Cabo da Roca>. 그곳은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경계선이었다. ‘여기서 땅은 끝나고, 바다는 시작된다’는 비석의 문구처럼, 이곳은 대지의 숨결이 멈추고 수평선의 세계로 접어드는 문턱 같았다. 바람은 거칠고 바다는 깊었다. 한낮의 햇살 아래서도 쓸쓸함이 맴도는 풍경이었다. 바로 그 쓸쓸함 속에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충만함을 느꼈다.
나는 오래전부터 경계라는 것에 매료되어 있었다. 지도의 선 하나, 표지석 하나가 인간의 세계를 갈라놓고 정리해주는 것에 이상하리만치 끌렸다. 국가와 국가의 끝, 지역과 지역의 경계, 그 땅의 끝자락을 직접 찾아가 발을 딛는 일이 내겐 일종의 의식과도 같았다. 그래서 이곳, 호카곶도 의미가 크다. 특별한 목적은 없었다. 다만 서쪽의 끝에 한 번 서보고 싶었다. 거기 서서 세계의 끝을 느끼고 싶었다.
호카곶은 리스본에서 멀지 않다. 사람들은 쉽게 이곳에 도착한다. 나 역시 편리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도착했다. 그래서일까, 도착하자마자 약간의 허무함이 스쳤다. 주변의 풍경은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었다. 제주도의 어느 해안과 닮아 있어 낯설지 않았다. 그 친숙함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찾아온 ‘끝’이라는 이름에는 더 극적인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풍경은 표면일 뿐이고, 이곳에 서 있는 '나 자신'이야말로 의미의 중심이라는 것을.
호카곶에는 인증서를 발급해주는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다. 11유로를 내면 ‘당신은 유럽의 서쪽 끝에 다녀갔습니다’라는 한 장의 종이를 받을 수 있다. 처음엔 다소 실망스러웠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인증은 내게 의미가 덜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종이 한 장보다, 그 자리에 서 있던 나 자신의 마음이 훨씬 값졌다.
호카곶은 역사적으로도 흥미로운 장소다. 포르투갈의 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는 이곳을 ‘세상의 끝’이라 불렀다. 그 시절, 바다 너머로 나아가던 항해자들은 이곳에서 출발하거나, 이곳을 지나며 대서양 너머의 미지로 향했다. 지금도 그들의 숨결이 바람결 속에 남아 있는 듯하다. 낭떠러지 위로 부서지는 파도 소리는, 오래된 뱃사람들의 전설을 들려주는 듯했다. 나는 그 물소리를 들으며 문득, 바다를 등지고 대지를 바라보았다. 대서양의 끝이자 유럽의 경계에 서서, 나는 경계의 의미를 되새겼다.
경계는 멈춤이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시작이다. 이곳에서 걸음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이곳으로부터 다시 생각을 시작하는 일이다. 호카곶에 다녀온 오늘, 나는 하나의 경계를 넘었고, 또 하나의 시선을 얻었다. 돌아가는 길, 바람은 여전히 세차게 불고 있었고, 나는 그 바람을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 경계 너머의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역시 오길 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