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 | 아현동에서 빛나는 유럽의 기억

마포 <성 니콜라스 대성당>






공덕을 지나 걷는 발걸음은 대개 비슷하다. 회색 빌딩의 유리창이 하늘을 얇게 잘라 붙이고, 점심과 업무 사이의 사람들은 늘 직선으로 이동한다. 나 역시 그 직선의 한 조각이 되어 골목을 통과하던 어느 가을날이었다. 바람이 방향을 바꾸는 순간을 우연히 붙잡았다. 노랗게 익은 은행잎이 공기 속에서 한 번 반짝이고, 그 반짝임이 내 발끝을 살짝 옆으로 밀어냈다. 그렇게 나는 바쁜 표정을 뒤로하고, 조금 여유로워 보이는 동네로 이동했다.


공덕동 옆 동네로 진입했다. 아현동의 길은 ‘여기까지 와서 뭐 하러’라는 듯 조용했다. 아파트 단지들은 서로의 어깨를 기대고 서 있었고, 그 사이로 난 작은 보행로는 지도를 믿는 사람보다 바람을 믿는 사람에게 더 친절하였다. 그 안쪽에, 숨겨놓은 듯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있었다. <성 니콜라스 대성당>을 처음 마주쳤을 때 나는 이질감보다 안도감을 먼저 들었다. 뾰족하게 하늘을 찌르는 대신 둥글게 하늘을 품는 형태가, 사는 일이 자꾸만 각을 세우게 만들 때 오히려 마음을 펴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파트 숲 사이에서 이 건물은 ‘나도 여기 오래 있었어’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있는 방식으로 모든 말을 끝내는 것 같았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바깥의 도시가 소리를 낮췄다. 안쪽의 공기는 한 겹 더 두껍고, 빛은 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나는 교회나 성당에서 흔히 느끼는 ‘올려다보게 하는 장엄함’보다, ‘안으로 잠기게 하는 고요’를 먼저 경험한다. 천장과 벽,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색과 선들이 마치 오래된 언어처럼 얽혀 있어, 당장 뜻을 모른 채로도 여긴 다른 리듬으로 기도하는 곳임을 알게 하였다. 나의 눈은 자꾸만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사람의 높이로 내려왔다. 이 공간은 하늘을 멀리 두지 않고 가까이 들여놓아, 보는 사람의 숨결과 섞이게 하였다.


가을빛은 그날 유난히 공손하게 들어왔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든 계절의 빛은 원래부터 금빛을 품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나 더 세밀한 금빛으로 갈라졌다. 창을 통과한 빛이 바닥에 내려앉을 때, 나는 그것이 ‘색’이라기보다 ‘시간’에 가깝다고 느꼈다. 빛이 천천히 움직이며 의자와 벽, 사람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데, 그 흔적이 마치 한 문장씩 적어 내려간 필체처럼 남았다. 유럽의 성당에서 보았던 압도는 종종 크기의 문제였지만, 여기서의 아름다움은 가까움이 전제되어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빛이 내 안쪽을 조용히 눌러 앉혔다.


그러다 나는 신부님과 마주쳤다. 외국인 신부님의 얼굴에는 낯선 발음이 가진 느린 친절이 묻어 있었다. 그는 먼저 미소로 공간을 열어 주었다. 마침 그날, 신부님의 나라에서 온 지인 분이 성당에 들렀던 것 같았다. 그분은 여기저기 손짓으로 안내하며 설명을 풀어놓는데, 그것이 거창한 강의가 아니라 누군가의 집을 소개하듯 다정하였다. 나는 의도치 않게 그 옆에 서서, 나도 모르게 도슨트의 끝자락을 함께 붙잡았다.

그분은 그림들이 단지 장식이 아니라, 기도의 시선이 머무는 자리라고 말했다. 어떤 이미지는 밝은 얼굴로, 어떤 이미지는 깊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듯하고, 그 시선 앞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평가받는다’기보다 ‘기억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성당이 한국에서 특별한 이유를 누가 묻는다면, 나는 이제 숫자나 연대 대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곳은 한반도의 바람 속에 ‘동쪽의 신앙’이 남긴 둥근 흔적이며, 우리가 익숙한 방식과는 다른 형태의 경건이 서울의 한복판에서 조용히 숨 쉬는 증거라고. 건축은 결국 믿음이 몸을 얻는 방식인데, 이곳은 믿음이 ‘직선’이 아니라 ‘원’으로 몸을 얻은 자리라 느꼈다. 그래서 나는 이 장소가 단지 예쁜 건물을 넘어, 한국이라는 땅이 여러 방향의 기도를 받아들여 품어온 역사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밖으로 나올 때, 아파트 단지는 다시 현실의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달라진 속도로 걸었다. 공덕의 오피스 상권이 가진 빠른 호흡이 다시 내 몸을 끌어당겨도, 마음 한쪽에는 둥근 돔의 고요가 남아 있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바람에 한 장씩 떨어지며 내 어깨를 스쳤다. 그 가벼운 접촉이, 성당 안에서 보았던 빛의 조각과 이어져 있는 듯했다. 여행은 멀리 가는 일이 아니라, 익숙한 도시가 숨겨둔 문을 우연히 여는 일이기도 하다. 낯익은 마포의 도시에서 난 새로운 유럽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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