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아사히카와 <스미야>
아사히카와에 닿은 첫날의 공기는, 생각보다 옹골찼다. 삿포로보다 더 안쪽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듯했다. 숨을 들이마시면 콧속이 조금 시큰했고, 입김은 말보다 빠르게 하얘졌다. 북쪽의 도시는 대체로 그렇다. 반갑게 손을 흔들기보다, 조용히 목례만 해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아사히카와는 큰 도시인데도, 과장된 표정이 없다. 길은 넓고 하늘은 낮았다. 중심가를 걷다 보면 여행지의 화려한 간판보다 사는 곳의 리듬이 먼저 보인다. 이 도시의 시간은 오래전부터 층층이 쌓여왔을 텐데, 오늘의 나는 그 위를 잠시 밟는 손님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뭔가를 알아야겠다는 마음보다 ‘느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앞섰다.
낮 동안의 이동이 끝나고, 밤이 찾아왔다. 호텔 방에서 샤워를 마치고 로비로 내려갔다. 로비의 조명은 적당히 따뜻했지만, 바깥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다. 동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하루 종일 흩어져 있던 피로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풀리는 게 신기했다. 아마도 배도 채우고 술도 마시는 시간임을 알기에. 우리는 오늘 저녁은 여기라고 정해둔 곳으로 향했다. 아사히카와 시내의 <스미야(炭や)>. 이름부터 숯 냄새가 나는 집이었다.
가게 문을 여는 순간, 후끈한 온기가 우리를 맞이했다. 겨울 도시의 찬 공기가 한층 벗겨지고, 대신 연기와 고기와 소금의 냄새가 그 자리를 채웠다. 환풍이 완벽한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맛있게 먹는 게 목적인 우리에게는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숯불을 받았고, 곧 ‘시오 호르몬’이 올라왔다. 소금 간을 한 돼지 내장을 숯불에 굽는 요리다. 눈과 바람이 심한 곳에서, 짭짤한 맛이 어떻게 사람을 살리는지 나는 그때 조금 알 것 같았다. 뜨겁고 짠 것은 겨울의 언어다. 몸이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앞에는 부산에서 부모님이 고깃집을 하는 ‘대장님’이 있었다. 대장님의 고기를 다루는 손이 남달랐다. 집게를 먼저 내가 집었지만 얼른 뺏은 이유가 있었다. 집게를 쥔 손목이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불과 고기 사이의 거리, 뒤집는 타이밍, 한 조각을 살려내는 집중력. 그 와중에 대화는 끊기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매일 반복해온 사람만이 갖는 리듬. 석쇠판이 가운데가 볼록해서 고기를 뒤집다 보면 가끔 바닥으로 미끄러져 떨어지기도 했는데, 그 순간조차 놓치지 않는 능숙함이 있었다.
소금구이가 시작되자 생맥주는 거의 자연현상처럼 따라왔다. 맥주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그날만큼은 잔을 비우는 속도가 내 마음을 따라잡았다. 한 잔, 두 잔, 그리고 어느새 다섯 잔쯤. 짭짤한 지방이 입안에서 부서지고, 그 틈에 차가운 탄산이 들어오면, 세상이 잠깐 정리되는 느낌이 든다. ‘오늘’이라는 날짜가 불필요하게 복잡했던 마음의 서랍을 한 칸씩 닫아주는 것처럼.
고기는 여러 부위가 돌았다. 어떤 조각은 바삭했고 어떤 조각은 부드러웠다. 같은 돼지의 몸에서 나온 것들이, 불 위에서 각각 다른 표정을 갖게 되는 게 묘했다. 사람도 그렇지 않나. 같은 하루를 지나도, 누군가는 바삭해지고 누군가는 부드러워진다. 그 차이를 만드는 건 아마 불의 세기보다, 마음의 온도일 것이다. 우리는 한동안 말을 줄었다. 말이 줄어드는 자리에는 대개 만족이 있다. 숯불 앞에서는 특히 그렇다. 맛있는 음식은 사람을 과묵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