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루 <오타루운하><르타오><오르골당>
홋카이도의 겨울 여행은 가장 큰 변수가 ‘눈’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도로의 규칙과 일정의 윤곽, 나의 의욕까지 함께 덮어버리는 힘이라는 걸 이곳에서는 곧장 배우게 된다. 도로를 처음 달리던 날, 바닥을 콕 찍는 빨간 화살표를 보자마자 물었다. 홋카이도 여행자의 통과의례 같은 질문이다. 그 화살표는 인도와 도로의 경계를 가리키는 야바네(시선유도표지)라 하여, 눈이 차선을 지워버리는 계절에 운전자의 시선을 붙잡아 주는 겨울의 이정표라고 한다. 눈이 ‘많이’ 오는 게 아니라, 세상의 경계를 흰 종이로 덮어버리는 방식으로 오니, 길은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저 붉은 손가락을 세워두는 셈이다.
오후 일정 내내 오타루를 둘러보기로 했으나, 주어진 시간은 두 시간 반으로 줄었다. 저녁 이전에 이곳을 떠나야 한다. 마음 한쪽에서 오타루의 야경이 천천히 무너졌다. 그렇게 낮의 오타루에 도착해, 시그니처 장소라 불리는 오타루 운하 앞에 섰다. 한적한 시골의 ‘청계천’ 같았다.
여행 전, 오타루 운하에 대한 타인의 여행 기억을 한 움큼쯤 들고 왔다. 대부분이 야경 이야기였다. 가스등이 켜지고 창고 벽이 물 위에 한 번 더 지어지는 밤, 누군가는 여기서 고백하면 이상하게 용기가 난다며 웃었고, 누군가는 물결에 비친 불빛을 ‘말 못 한 문장들’의 행렬처럼 세어보라고 했다. 운하는 본래 바다 곁을 메워 만들었던 ‘일의 통로’였고, 지금은 시간을 천천히 걷게 하는 산책로가 되었다. 겨울이 오면 그 변화가 더 또렷해진다. 오타루의 겨울은 ‘차가움’이 아니라 ‘따뜻함이 더 잘 보이게 되는 배경’으로 바뀐다. 시민들이 시작했다는 ‘눈아카리 오타루’의 밤에는 촛불이 길을 만들고, 얼음으로 빚은 작은 등롱들이 손바닥만한 온기를 품는다. 운하 위에는 옛 어부들의 유리 부표를 닮은 빛들이 떠서, 한때 이 도시를 먹여 살리던 바다의 기억을 조용히 조명한다. 매년 2월 초중순에 오타루에 오면, 사람들은 그 빛을 보기 위해 기꺼이 추위를 선택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운하를 오래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이내 도심 쪽으로 몸을 틀었다. 오타루 시내 길거리에서 상점들은 각자 자기 속도로 숨 쉬며 겨울 공기 속에 작은 온도를 내놓고 있었다. 운하 쪽에서 불어온 짠 바람이 골목을 한 번 훑고 지나가면, 유리 공예점 쇼윈도에는 바다빛을 닮은 푸른 잔과 구슬이 얇은 빛을 물고 반짝였다.
<르타오> 건물 앞에 멈췄다. 설탕과 버터가 섞인 달콤한 냄새가 문틈으로 새어 나오고, 따뜻한 김이 쇼케이스 유리에 맺혔다. 나는 추위를 피할 겸 아이스크림 웨이팅 줄에 합류했다. 홋카이도 생크림을 베이스로, 마스카르포네가 우유 향을 더 두껍게 잡아줬다. 중후한 바디감에 단맛은 과하지 않게 눌리고 고소함이 올라왔다. 내 취향과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바삭한 콘의 반전이 있어 금방 다 먹었다. 콘 속까지 꽉 채운 성실함이 이상하게도 일본인의 기질과 닮아 보였다.
다시 나와 걸었다. 기념품점 진열대는 촘촘했다. 해초 향이 묻은 다시마 간식, 반짝이는 오르골, 작은 곰 인형과 유키다루마 소품이 서로의 그림자를 겹쳐 만들었고, 계산대 옆에는 ‘여행의 끝은 선물로 정리된다’는 엽서와 자석이 빽빽이 매달려 있었다.
메르헨 교차로에 이르자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횡단보도 반대편에는 오타루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 <오르골당>이 서 있었다. 본관 앞에 서면 사람들은 가게보다 먼저 한 덩치 큰 ‘시계탑’에 붙잡힌다. 세계 최대급으로 알려진 브론즈 증기시계는 ‘저게 진짜 증기로 움직인다고?’라는 질문을 저절로 끌어낸다. 15분마다 휘슬로 짧은 멜로디를 불고, 정각에는 더 길게 공연하듯 울린다. 사람들은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도 그 틈 속에 뿌리를 내렸다. 여행지에서 군중이 생기는 이유는 ‘같은 순간을 동시에 갖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라 생각한다.
오르골당 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바깥의 바닷바람은 겉옷에만 남겨둔 채 실내의 따뜻한 공기와 잔잔한 음들이 나를 감싸 안았다. 오래된 목재 바닥이 작게 울리고, 노란 조명이 유리 진열장 위로 번지며, 셀 수 없이 많은 오르골이 제각각의 숨결로 작은 합창을 시작했다. 오르골을 살 의도는 없다고, 나는 들어오기 전까지 분명히 생각했으나 그 말은 이곳에서 금세 힘을 잃는다. 오르골은 물건이라기보다 ‘소리로 된 기억’에 가까워서, 하나를 집어 들면 어떤 장면이 떠오른다. 증기시계를 닮은 오르골이 태엽을 품고 조용히 고개를 들고, 빛이 세 가지 색으로 바뀌는 라이트 돔 오르골은 어둑한 홀에 작은 오로라를 품어댄다. 초밥 모양 오르골과 손바닥만 한 동물 인형 오르골이 가벼운 무드를 만들고, 앤틱 오르골은 ‘소리의 골동품’처럼 고요한 위엄을 두른다. 처음에는 소리를 고르다가도, 어느 순간 소리에게 고백을 듣는 것 같아 더 오래 머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