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삿포로맥주박물관>
비에이에서 삿포로 시내로 넘어오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퇴근시간과 겹친 도로는 마치 한숨을 삼킨 듯 좁아졌고, 차들은 조금씩만 앞으로 나아갔다. 저녁이 가까워지자 눈발이 갑자기 거세졌다. 하마터면 입장을 못할 뻔했다는 말은, 그날의 날씨보다도 내 마음의 조바심을 더 정확히 설명했다. 드디어 <삿포로맥주박물관>에 도착했다. 나는 사람들이 삿포로 맥주를 두고 ‘담백한데 명확하다’라고 말하는 그 감각을, 머리가 아니라 코끝과 혀끝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눈이 쌓인 돌바닥을 밟으며 박물관 쪽으로 뛰어가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차가운 공기가 콧등에서 맑게 부서지고, 숨은 하얗게 흩어졌다. 도시에 내리는 눈은 소리를 지우지만, 어떤 곳은 오히려 그 침묵 덕분에 더 선명해진다. 박물관 입구의 붉은 벽돌은 오래된 시간의 심장처럼 묵직하게 고동쳤고, 그 옆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둘러진 큰 전나무가 우렁차게 서 있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빙판 위에서 미끄러지듯 반짝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전시는 ‘맥주의 역사’라기보다 한 도시가 자신을 발효시켜 온 연대기를 보여주는 듯했다. 곡물과 물, 효모와 같은 단순한 재료들이 어떻게 한 지역의 기후와 노동, 취향과 산업을 품고 브랜드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는지. 안내 동선은 두 개의 풍경을 보여줬다. 하나는 자유 관람으로 장비와 라벨, 기억의 조각을 천천히 훑는 산책이었고, 다른 하나는 해설과 시음이 이어지는 유료 투어의 흐름이었다. ‘마신다’는 행위 앞에 ‘알아간다’는 시간은 지루할 수도 있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다. 특히, 나와 같이 양조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러다가 전시관에서 우연히 영보를 만났다. 너무 신기해 말보다 먼저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은 바빴다. 시음 줄에 안착하지 못하면 오늘의 목적이 반쯤 흐려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짧은 인사 후 곧장 시음 공간으로 이동했고, 내 차례가 되자 자판기에서 테이스팅 세트와 간단한 안주 티켓을 끊었다. 일본의 기차표처럼 얇고 단단한 종이. 그 작은 종이를 손에 쥐는 순간, 기다림은 순서가 되고 순서는 기대가 되었다. 일행 일부가 자리를 잡는 동안, 나는 잠깐 전시관으로 되돌아가 지나쳤던 문장들을 발췌하며 시간을 아꼈다. 투어를 예약한 사람이라면 체크인 후 전시를 가볍게 훑고, 투어가 끝난 뒤 곧장 시음으로 이어가 흐름을 끊지 않는 편이 좋겠다. 감각은 맥락을 잃는 순간 쉽게 무뎌지니까.
직원에게서 티켓과 맥주를 교환받았다. 삿포로 클래식, 카이타쿠시, 그리고 쿠로라벨 계열. 클래식은 ‘홋카이도 한정’이라는 말답게 더 부드럽고 둥글었다. 차가운 바람에 괜히 마음이 떨릴 때, 그 둥근 목넘김이 사람을 조금 덜 외롭게 해주는 느낌이 있었다. 삿포로 여행 중 몇 번 마셔봤지만, 역시 양조장에서 마시는 술이 최고였다. 카이타쿠시는 ‘처음의 레시피를 다시 불러낸’ 복각처럼, 한 모금마다 옛 종이 냄새 같은 고전적인 단맛과 향이 따라왔다. 쿠로라벨은 깔끔한 라거의 정석답게 씁쓸함과 청량감의 균형이 좋아 대화의 시작과 끝을 또렷하게 정돈해줬다. 같은 라거라도 잔마다 성격이 달라서, 사람들과 서로의 안부를 다시 묻듯 천천히 비교하며 맛을 나눴다. 비슷하지만 다른 형제들. 그 미묘한 차이가 결국 취향을 만들고, 취향은 한 도시를 다시 찾게 한다.
안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다시 건물 밖으로 나왔다. 눈은 그쳤다. 우리는 차례로 아까 사람들이 배경으로 삼았던 크리스마스 트리에 한 명씩 서서 인증샷을 찍었다. 눈 덮인 붉은 벽돌의 건물을 지긋이 바라보며 버스로 향했다. 그리고 나만의 맥주투어 총평을 다듬었다. 담백한데 명확하다는 말은, 화려함으로 밀어붙이지 않고도 끝까지 방향을 잃지 않는 맛을 뜻하는 게 아닐까. 여행에서 그런 순간을 만나면 사람은 안다. 결국 어떤 도시를 기억하게 만드는 건 랜드마크보다도, 그 도시가 스스로를 오래도록 숙성시켜 온 방식이라는 것을. 특히 나같은 술쟁이들은 그 도시가 곧 그 도시의 술이란 걸 잘 알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