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기후우 스스키노>
삿포로에 오면 미소라멘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 이상하게도 ‘해야 할 일’처럼 들렸다. 관광지의 의무감이라기보다, 이 도시의 성향을 파악하는 방법 같았다. 왜 하필 미소일까. 왜 삿포로는 미소라멘으로 기억될까. 여행은 늘 이런 궁금증 하나로 밤을 늘린다.
생각해보면 답은 어렵지 않다. 이곳은 겨울이 길고, 바람은 뺨을 자주 때린다. 그런 도시에서 뜨겁고 진한 국물은 음식이라기보다 작은 난로에 가깝다. 미소가 들어가면 국물이 더 묵직해지고, 입안에 남는 여운이 길어진다. 한 숟갈 뜨면 속이 살겠다고 먼저 말한다. 삿포로가 미소라멘과 닮았다는 건, 어쩌면 이 도시가 사람을 달래는 방식이 진득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1차를 마치고 누군가가 말했다. “해장 겸 라멘 갈까?” 그 한마디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술자리의 끝은 늘 뜨거운 국물로 이어지니까. 게다가 삿포로까지 와 놓고 미소라멘을 건너뛴다는 건, 사진을 찍지 않고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일처럼 어딘가 허전할 것 같았다.
우리는 스스키노 쪽으로 걸었다. 삿포로의 유명한 라멘 골목이 그 근처에 있다기에, 별생각 없이 따라갔다. 골목 입구에 다다르자마자 잠깐 멈춰 섰다. 밤 아홉 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웨이팅 대열이 어마어마했다. 고작 라멘 한 끼일뿐인데, 한밤중에 웨이팅이라니. 이해가 안 되면서도, 그 도시의 진심이 보이는 순간이어서 묘하게 설렜다. 사람들은 추위를 피해 라멘집 앞으로 모여 있었고, 김이 올라오는 문틈은 작은 극장 입구처럼 보였다.
문제는 선택이었다. 함께 온 사람들 중에는 여긴 다 아는 데라고 앞장서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찍어둔 가게들은 모두 최소 30분 이상 기다려야 했다. 한국인들에게 소문난 집 앞은 특히 더 북적였다. 반면 어떤 집은 바 자리에 빈틈이 보였는데도,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지나쳤다. 맛의 세계도, 인기의 세계도 참 냉정했다. 우리는 결국 골목을 빠져나오기로 했다. 기다림이 싫어서라기보다, 한국인 인파 속에서는 우리의 니즈가 충족되지 않을 것 같았다.
골목 바로 건너편에 또 유명한 집이 있다고 했다. 다만 좌석이 일곱 개뿐이라 줄이 더 길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보기로 했다. 줄이 너무 길면 다시 돌아오자는 조건을 내걸었다. 다행히 줄은 여덟 명 정도였다. ‘이 정도면 괜찮다’는 합의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우리는 얼른 줄의 끝에 섰다. 메뉴는 고민할 것도 없었다. ‘미소라멘’.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성지 같은 곳에서 먹는 성지의 음식은, 늘 기대를 조금 과하게 부풀린다. 하지만 여행의 재미는 바로 그 과장된 기대를 품는 데도 있으니까.
가게 이름은 삿포로 <기후우 스스키노 輝風 すすきの店>. 기다리는 사람도, 안에서 먹는 사람도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낯선 도시에서 현지인들 사이에 섞여 줄을 서면, 나도 잠시 그 도시에 속한 사람처럼 빙의한다. 내 차례가 오면 문 앞 자판기에서 표를 끊고, 자리를 안내받는 방식이었다. 단순하고, 깔끔하고,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먹는 일’은 이렇게 단정해도 좋다.
벽에 붙은 영업시간을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새벽 다섯 시까지. 세상에, 라멘을 새벽 다섯 시까지 먹는 사람들이 있다니. 그건 단순히 장사가 길다는 말이 아니라, 이 도시에는 밤의 끝을 뜨거운 국물로 마무리하는 문화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눈이 내리고, 귀가 얼어도,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따뜻한 그릇 하나를 잡고 하루를 닫는다. 술보다 라멘이 더 늦게까지 남아 있는 도시라니, 이상하게 믿음직했다. 생각해보니 신촌의 ‘최루탄라면 훼드라’도 새벽 첫차를 기다리면서 먹었던 추억이 생각났다.
라멘이 나오기 전까지 나는 생각했다. 삿포로가 미소라멘으로 유명해진 이유는, 누군가가 ‘이게 팔리겠지’ 하고 계산해서가 아니라, ‘이게 필요하니까’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추운 곳에서는 뜨거운 것이 곧 위로가 된다. 위로는 대개 거창하지 않다. 소금 한 꼬집, 된장 한 숟갈, 뜨거운 김 한 줄기면 충분하다. 한국의 해장국도 마찬가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