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스스키노 <사부로>
오후 여행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을 때, 몸은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를 한 층 뒤집어쓴 것처럼 무거웠다. 낯선 도시를 오래 걷고 나면, 발바닥보다 마음이 먼저 피로해진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걸터앉은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오늘의 여정을 천천히 접어 메모장에 적어 넣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밤의 얼굴을 보러 나갈 준비가 되었다.
저녁 7시를 조금 넘긴 시각, 장정 다섯이 어깨를 맞추고 호텔 현관을 나섰다. 삿포로는 친절한 도시다. 몇 분만 걸어도 스스키노의 불빛이 손을 뻗어 우리를 끌어당겼다. 술집 간판들이 빽빽하게 겹치고, 골목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담배 연기, 튀김 냄새가 한데 섞여 살아 움직였다. 처음부터 ‘여기’라고 정해둔 1차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가고 싶은 곳을 몇 군데 메모해 두긴 했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사정은 단순했다. 만석. 또 만석. 줄. 줄. 줄. 조금만 더 일찍 나왔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목 뒤에서 서늘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상위 순위’라는 말이 무색하게 후보들이 하나씩 지워질 즈음, 드디어 테이블 하나가 남았다는 곳에서 우리도 숨을 골랐다. 홋카이도의 신선한 해산물을 중심으로 다양한 요리를 낸다는 해산물 이자카야, <사부로(さぶろう) 스스키노점>. 스스키노의 중심부답게 손님은 젊은 층부터 퇴근 후 넥타이를 느슨하게 푼 직장인들까지 다양했다. 낮은 층고와 세월이 묻은 인테리어는 ‘최신’의 반대편에서 묘한 안도감을 줬다. 그 안도감은 때로 여행에서 중요하다. 낯선 곳에서조차 익숙한 종류의 소란을 발견했을 때, 사람은 괜히 마음을 놓는다.
다만 결정적인 단점이 있었다. 실내 흡연. 테이블 위에 재떨이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곳의 규칙은 충분히 짐작됐다. 비흡연자인 나에게는 밤공기보다 실내 공기가 더 답답했다. 앞자리, 옆자리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희뿌옇게 번져 오고, 대화의 문장 사이사이에 담배의 잔향이 끼어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상하게 크게 불쾌하진 않았다. ‘문화’라는 말로 무엇이든 덮어버리려는 게 아니라, 여행이란 결국 타인의 생활 반경에 잠시 들어가 보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답답하면 잠깐 밖으로 나가 숨을 고르면 된다. 견디는 것이 아니라, 조절하는 것. 여행에서 배우는 작은 기술이다.
메뉴판은 그 자체로 한 권의 책이었다. 일본어로 빼곡한 항목들 앞에서 우리는 파파고를 열었다 닫고, QR코드를 찍어 휴대폰 화면으로 또 한 번 확인했다. 주문은 단순하게 시작했다. 120분 노미호다이 맥주. 그리고 안주는 생각나는 대로—초밥, 계란말이, 오징어 숙회, 가라아게, 감자튀김까지 한꺼번에 몰아넣었다. 이 집은 주문하면 세월아 네월아, 시간이 꽤 느리게 흘러가는 편이라 초반에 넉넉히 시키는 편이 현명했다. 맥주도 비워지는 대로 종업원을 불러야 했다. 잔에 맥주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다음 잔을 내주지 않는 규정이 있었다. 맥주를 테이블에 쌓아두는 것을 막기 위한, 소소하지만 단단한 룰이었다.
의외였던 건 초밥이었다. 스스키노 한복판, 술자리용 이자카야에서 기대했던 것보다 생선의 결이 곱고 단맛이 살아 있었다. 한 점을 입에 넣으면 바다가 잠깐 혀끝에 닿았다가, 따뜻한 실내 공기 속으로 다시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몇 번이고 같은 메뉴를 다시 눌렀다. 맥주가 슬슬 단조롭게 느껴질 때쯤 사케와 하이볼, 소츄를 추가해 밤의 리듬을 바꿨다. 노미호다이는 세 잔만 넘겨도 본전이라고들 하지만, 아마 나는 다섯 잔 이상을 마셨을 것이다. 숫자를 세는 일은 대개 계산을 위한 것이지만, 여행에서는 기록이 된다. 그날의 대화가 몇 번이나 넘실거렸는지, 얼마나 천천히 마음이 풀렸는지.
테이블은 좁았다. 여섯 명이 앉을 수 있다지만 외투를 둘 곳도 애매했고, 몸을 움직일 때마다 서로의 공간을 조심스럽게 비켜야 했다. 그런데 그런 협소함이 오히려 우리를 한 덩어리로 묶었다. 무엇을 먹었는지 만큼, 누가 어떤 표정으로 잔을 들었는지, 어떤 말이 대화의 주제로 번졌는지가 오래 간다.
스스키노의 밤은 반짝이는 간판들처럼 화려하지만, 정작 기억은 이런 자리에서 생긴다. 연기 자욱한 실내에서 잠깐씩 문밖으로 나가 숨을 고르고, 다시 돌아와 바다의 한 점을 입에 올리는 반복. 그 사이에서 우리는 여행자에서 ‘생활음주인’으로 잠깐 변신한다. 오늘의 피로는 술잔 바닥에 가라앉고, 내일의 풍경은 아직 오지 않은 채로 남는다. 그리고 그 ‘남아 있음’이야말로,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정직한 여백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