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다루마 6.4>
보통 고깃집은 술자리의 1차에 놓인다. 불판과 기름, 뜨거운 열기가 ‘이제 막 시작한다’는 신호처럼 느껴지고, 바디감이 높아 비어 있는 위장의 가장 아래 쌓아놔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3차에 고깃집이라니, 아무리 1차와 2차에서 고기를 피했다 해도 어딘가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위장은 이미 하루의 할 일을 마쳤는데 말이다. 그런데 삿포로라면, 이 규칙은 가볍게 흔들린다. 더욱이 <다루마 だるま>에 웨이팅이 없다면, 그건 어쩌면 여행이 내게 내미는 작은 허가증 같은 것 아닐까.
우리는 원래 이자카야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주말 저녁의 스스키노는 빈자리를 좀처럼 내어주지 않았다. 문을 열 때마다 “만석입니다”라는 말이 반복되었고, 그 말은 점점 일행의 발걸음을 호텔 쪽으로 끌어당겼다. 누군가는 “편의점에서 사서 방에서 먹자”고 했다. 도시가 낯설수록 사람은 ‘확실한 것’으로 퇴각하고 싶어진다. 반면 나는 조금 달랐다. 다시 올지 모르는 곳에서는, 안전한 선택보다 ‘겪어 볼 것’이 남는다고 믿는 편이었다. 다행히 비슷한 성향의 동료가 있었다. 우리는 끝까지 3차를 고수하며 골목을 걸었다. 그러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 다루마 매장 앞에서 ‘기다림 없는 문’을 발견했다.
다루마는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징기스칸(양고기 구이) 전문점이다. 이름을 처음 들으면 몽골의 징기스칸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 단어는 어느새 이 섬의 북쪽에서 하나의 음식 언어가 되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몽골 기병이 철모 같은 철판 위에서 고기를 구워 먹던 모습에서 착안했다 하고, 또 다른 맥락으로는 1930년대 홋카이도에서 양 산업을 장려하며 양고기 소비를 촉진했던 시대의 정책이 이 요리를 자라게 했다고도 한다. 전설과 제도가 한 냄비 위에서 만나 지역의 대표 음식이 되었다니, 음식이란 늘 이렇게 사람의 삶과 시대의 선택을 함께 끓여낸 결과물인지도 모르겠다.
징기스칸의 조리는 독특하다. 가운데가 봉긋하게 솟흔 돔 형태의 전용 불판 위에 고기를 올리고, 가장자리 홈에는 양배추나 콩나물, 양파, 버섯 같은 채소를 둘러앉힌다. 고기에서 나온 기름이 채소로 스며들어 풍미가 전달하는 구조다. 그 이동이야말로 징기스칸의 핵심 같았다. 여행하면서 낯선 곳에 내가 흘린 감정과 시간들이 어느 순간 내 일상으로 스며들어, 나를 조금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것과 닮아 있었다.
밖에 웨이팅이 없다고 해서 안이 한가한 것은 아니었다. 기다리는 손님이 ‘밖’이 아니라 ‘안’에 있을 뿐, 매장은 여전히 만석이었다. 우리는 홀 한편의 대기 좌석에 앉아 바 테이블을 바라봤다. 희뿌연 연기가 생각보다 많이 올라왔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후드가 빠르게 삼켰을 풍경인데, 여기서는 연기가 공기 중에 머물며 저녁의 증거처럼 떠다녔다. 누군가 말하길 다루마의 단점은 이 연기와, 여름이면 냉방이 충분치 않아 땀을 흘려가며 먹어야 한다는 것이라 했다. 이상하게도 그 불편이 싫지 않았다. 최소한 겨울에는. 몸이 조금 고생해야 여행은 기억 속에 더 또렷하게 눌러 찍히는 법이니까. 게다가 방금 전 이자카야에서 맡았던 담배 냄새에 비하면, 고기 굽는 연기는 오히려 방향제 같기도 했다.
드디어 자리가 났다. 앉기 전, 우리는 뒤편 사물함에 겉옷을 벗어 넣었다. 냄새는 이곳의 친절한 기념품이지만, 모든 기념품이 꼭 옷에 남아야 하는 건 아니므로. 메뉴를 펼치면 부위들이 간결하게 정리돼 있었다. ‘징기스칸’은 흔히 목살에 해당하는 부위로, 적당한 지방과 부드러운 식감이 장점이라 했다. ‘상질고기’는 등심 쪽이라 담백하고 깔끔한 결이 특징이고, ‘히레니쿠’는 안심처럼 지방이 거의 없어 양고기 향이 부담스러운 이에게도 좋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간장 베이스에 과일의 단맛과 마늘·생강의 매운 숨이 얹힌 특제 소스가 고기를 완성한다. 홋카이도 음식의 문법들을 숙지하는 재미가 있었다.
우리는 고민할 것 없이 전부 주문했다. 3차의 고깃집이 무모한 선택일지라도, 그 무모함이야말로 여행을 여행답게 만든다. 불판 위에서 고기가 익고, 가장자리에서 채소가 기름을 받아 달큰해질 때, 삿포로의 밤은 연기 속에서 더 진해졌다. 결국 내가 얻고 싶었던 건 ‘배부름’이 아니라 ‘경험치’였다는 것을, 어떤 도시는 이렇게, 가장 늦은 시간에 가장 선명한 장면을 선물한다. 연기가 걷히지 않는 다루마의 공기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을 기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