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하빌리스><문쏘><종문>
내 주변에는 ‘영은’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한 동료가 네 명이나 있다. 우연치고는 과하다 싶을 만큼, 신기하게도 그들은 모두 기혼자이고, 나이대도 나와 같거나 한두 살 어리다. 그리고 무엇보다—술잔 앞에서 어색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같은 속도로 걸을 수 있는 사람들로 기억해왔다. 다만 이제 그 문장은 과거형이 된다. 그중 ‘장영은’이 술을 끊었기 때문이다.
영은과 나는 남파랑길을 일주일 내내 함께 걸었던 사이다. 빠른 79년생이었지만 큰 진통 없이 동갑으로 관계를 맺었다. 자주 술을 마시는 친구는 아니어도, 함께 잔을 들면 내 속도를 비슷하게 맞춰주던 친구다. 그런데 이제는 술을 못 마신다. 그 사실이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다만 그 아쉬움은 금세 다른 감각으로 바뀌었다. 술이 빠진 자리에 남는 것은 ‘속도’였고, 영은은 맹물로 채운 잔으로도 여전히 내 페이스를 맞춰줬다. 취기가 아니라 동행이 우리를 이어주고 있었다.
제주에 도착한 건 오후 3시 무렵이었다. 이제 나는 제주에 올 때 디테일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날짜별로 큰 이벤트만 정해두고, 나머지는 바람과 사람에게 맡긴다. 혼자 공항에 내렸지만, 이미 제주에서 한 달 살이를 하고 있는 영은이가 마중을 나오기로 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 공항까지 걸어온다는 사실은 늘 벅차다. 그 시간은 ‘환대’라는 이름으로 건네지는 가장 비싼 선물이다. 그래서 반대의 경우, 나도 여유가 생기면 먼저 나가 기다리는 편이다. 운전을 못해 같은 방식으로 갚지 못하더라도, 마음의 방향만은 그렇게 두고 싶다.
영은이는 공항을 마치 제 집 앞 마당처럼 익숙하게 들어왔다. “오늘은 네 시간에 맞출게.” 그 말 한마디에, 제주라는 섬이 내 편으로 기울었다. 나는 곧장 내가 가고 싶었던 제주시내 카페 이름을 읊었다. 차는 제주 버스터미널 근처로 향했고, 전농로 왕벚꽃거리 인근에 주차를 하려 했지만 생각보다 자리가 없었다. 요즘 인기의 중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갔을 거라 지레 짐작했는데, 도로를 몇 바퀴나 돌고서야 그 오만을 내려놓았다. 다행히 공용주차장에 기막히게 남아 있던 한 칸이 우리를 받아주었다.
카페로 걷는 길이 이상하게 익숙했다. 나는 분명 처음이라고 믿었는데, 가까워질수록 주변 상권과 도로의 모서리가 기억 속에서 툭툭 깨어났다. 문 앞에 서서야 알았다. 이곳은 구면이었다. 왕벚꽃이 한창이던 계절, 손님들로 시끌거리던 홀, 의자 끄는 소리 같은 장면이 겹쳐졌다. 한겨울의 카페는 놀랄 만큼 한산했다. 조용한 걸 좋아하는 우리에겐 오히려 좋은 조건이었다.
저녁이 되자 동선은 자연스럽게 한림읍으로 모였다. 영은이의 한 달 살이 숙소도, 내가 며칠 머물 숙소도 모두 한림에 있었다. 서로의 생활권이 맞닿아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행운이다. 애써 맞추지 않아도 되는 합의가 생기고, 그 틈에서 대화는 더 편해졌다. 우리는 한 곳에서 배를 채우기보다, 가볍게 두 곳을 나눠 먹기로 했다. 두 식당 모두 영은이가 혼자선 못 가봤던 곳 중에서 골랐다.
가로등이 어두운 골목에 차를 세우자, 돌담이 먼저 말을 걸었다. 일본군 관사를 개조해 방마다 다른 테마로 꾸몄다는 그 공간은 문을 통과하는 순간 시간이 접히며 바뀌는 느낌을 줬다. 안쪽에서는 일본풍 벽화가 시야 끝에서 조용히 반짝였고, 좌식 룸과 테이블석은 서로 다른 숨결로 저녁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우리는 룸 가장 안쪽에 자리를 잡고 흑돼지덮밥과 에그인헬을 주문했다. 제주에 온 신고식처럼, 나는 한라산 소주를, 영은이는 무알콜 맥주를 곁들였다. 흑돼지덮밥은 3일 숙성의 시간 덕에 결이 느슨하게 풀려 불향이 얇게 깔린 채 입안에서 사각사각한 여운을 남겼다. 이스라엘식 스튜인 에그인헬은 사장님의 짧은 불쇼와 함께 강렬하게 등장했다. 낯선 요리가 낯설지 않게 착지하는 순간, 우리는 제주에서 작은 오키나와를 만난 듯한 기분을 공유했다.
그리고 둘 다 “여긴 정말 잘 왔다”라고 말하게 만든 두 번째 장소로 향했다. 누가 봐도 주인장의 얼굴이 담긴 사케 한 병을 먼저 주문했다. 공간은 군더더기 없이 정돈되어 있었고, 시선은 자연스럽게 다찌로 모였다. 요리하는 손의 리듬, 칼끝이 생선 살을 가르는 숨소리, 차갑던 접시가 김을 머금는 순간—그 모든 것이 내 식사에 자막처럼 따라붙었다. 접시가 놓일 때마다 ‘코스’라기보다 ‘제주 밤의 문장들’이 한 줄씩 읽히는 느낌이었다. 한 문장 한 문장마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감탄을 삼켰다. 담음새에는 각자의 명분이 있었고, 맛은 그 명분을 끝내 설득해냈다. 어떤 만남은 화려하게 취해 끝나고, 어떤 만남은 담백하게 맺힌다. 오늘의 우리는 후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