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 <역전양꼬치><술꾼>
지역마다 술자리를 하나씩 마련해 두는 일은, 내게는 사교라기보다 생활의 방식에 가까웠다. 내가 사는 마포만으로도 식사와 술의 세계는 충분히 완결되지만, 그렇다고 타 지역 원정을 마다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것을 스스로에게 권하는 편이었다.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은 늘 거창한 이동만을 뜻하지 않았다. 서울의 바깥, 경기와 인천의 낯선 동네로 향해 그 지역을 아는 사람과 한 상을 마주하는 일 또한 분명한 여행이었다. 혼자 술을 마시지 않는 나는, 결국 사람을 통해 지역과 연결된다. 누군가의 단골집과 오래된 취향, 그 동네의 공기와 리듬을 따라가며 맛을 익혀 가는 일이 나의 오랜 낙이자, 여행 테라피다.
낯선 도시의 골목을 걷고, 그 지역 사람들만 아는 식당의 문을 열어 한 끼를 나누는 순간마다 나는 지도 위의 이름으로만 존재하던 장소를 조금씩 살아 있는 얼굴로 만나게 되었다. 누군가의 추억과 습관, 계절마다 달라지는 입맛이 밴 식탁은 여행지를 단순한 경유지가 아니라 천천히 읽어야 할 한 권의 이야기로 바꾸어 놓았다. 내가 알지 못했던 지역을 이해하게 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은, 어쩌면 그곳에 사는 사람의 시간을 따라 맛을 더듬어 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동탄도 그전까지는 내 머릿속에서 다소 흐릿한 지명이었다. 화성에 속한 곳이라는 사실을 알아도 자꾸만 수원과 뒤섞였고, 광교와 동탄이 마치 이웃한 장면처럼 뭉뚱그려졌다. 머리로 아는 지리는 늘 부정확했고, 발로 익힌 장소만이 오래 남았다. 그 혼란이 풀린 것은 결국 사람 때문이었다. 2025년 봄, 인덕원 비빔국수 동탄점이 문을 열면서 우성이가 가게 운영에 본격적으로 손을 보태기 시작했고, 대학 후배 준보까지 그 일에 합류했다. 그렇게 내게는 동탄에 새로운 아지트가 생겼다. 몇 번이고 그곳을 찾아가 국수 한 그릇 앞에 앉고, 주변 주점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동탄이라는 이름의 윤곽을 몸으로 익혀 갔다.
그러는 사이 또 한 명의 연결고리가 생겼다. 예전 직장 동생 송이였다. 젊을 때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일을 별다른 주저 없이 해냈지만, 나이가 들수록 관계 하나를 엮는 데도 이유를 오래 따져 보게 되었다. 혹여 불필요한 균열이 생기지는 않을지, 가벼운 호의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의무가 되지는 않을지 스스로 점검한 뒤에야 사람을 소개했다. 그 모든 검토를 무사히 통과한 뒤, 나는 송이와 준보를 한자리에 앉혔다. 그렇게 비빔국수집을 거점으로 이른바 ‘동탄 카르텔’이 만들어졌고, 다음 모임은 셋 다 쉬는 날을 맞춰 병점에서 열리게 되었다.
그날의 명분은 분명했다. 준보가 우승턱을 내는 날. 그가 응원하는 팀은 LG 트윈스였고, 나는 두산 베어스 팬이었으며, 송이는 키움 히어로즈 팬이었다. 남의 우승을 축하하러 가는 자리, 그것도 라이벌 팀 팬이 쏘는 자리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분명 얻어먹는 자리인데도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개운하지 않았다. 두산 팬으로 오래 품어 온 비뚤어진 반항심이 쉽게 자리를 비워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 구워진 양고기 앞에 앉아 잔을 부딪치면서도 혀끝에는 묘한 씁쓸함이 남았다. 축하는 축하대로 건넸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내년의 반전을 슬그머니 꿈꾸고 있었다.
양꼬치 냄새를 옷깃 안에 깊이 밴 채 우리는 2차 장소로 걸어갔다. 술은 이미 꽤 오른 상태였고, 밤공기는 사람의 말끝을 조금씩 흐리게 만들었다. 그때 어둑한 길목 여기저기에서 ‘태안’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취기가 만든 착시인가 싶어 나는 걸음을 멈추고 지도 앱을 켰다. 서동탄 일대가 예전에는 태안읍이었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다. 술자리의 많은 장면은 다음 날 희미해졌지만, 이상하게도 그 지명만은 오래 남았다. 가끔 여행에서 가장 선명하게 남는 것은 거대한 풍경이 아니라, 취한 밤중에 우연히 주워 든 오래된 행정구역의 이름 같은 것일 때가 있다.
술기운이 서로의 경계를 느슨하게 풀어놓자, 농담은 조금 과해졌고 웃음은 한층 무방비해졌다. 송이는 준보의 뺨을 가볍게 잡아 늘이며 장난스럽게 얼굴을 품평했고, 준보 역시 순간적으로 짜증이 목 끝까지 차오르는 듯했지만 그 감정은 곧 다른 소란 속에 묻혀 버렸다. 그날 밤의 분위기는 불쾌와 유쾌, 짜증과 웃음이 또렷이 갈리지 않은 채 뒤섞여 흘러갔다.
2차를 마친 뒤 준보의 집으로 향했다. 늘 그렇듯 술자리의 끝에는 심준보 소믈리에가 권하는 와인이 있었다. 윤지가 만든 김밥은 안주가 되었다. 누워 게임을 하던 우성이까지 불러내 그 난장 같은 밤의 마지막 장면을 함께 채웠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기억이 흐려졌다.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빙고가 나를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숙취에 젖은 아침의 얼굴 위로 전날의 파편들이 더디게 돌아왔다. 비빔국수집 오픈 전에 해장국수 한 그릇 하고 동탄에서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