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배 <한국가양주연구소>
살다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직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한 번 스치고 지나간 듯했던 인연이 먼 시간을 돌아 뜻밖의 자리에서 다시 나타났고, 그렇게 끊어진 줄 알았던 선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매듭으로 이어지곤 했다. 내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어느 날 사촌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들뜬 목소리로 다짜고짜 물었다. “오빠, 혹시 한슬기라고 알아?” 이름을 듣는 순간, 기억은 잠시 버퍼링을 일으켰다. 그러나 몇 초 뒤, 오래된 사진의 초점이 맞듯 존재감이 선명하게 돌아왔다. 예전에 카페 ‘가마빈’에서 창단을 했던 이화여대 야구단의 멤버, 플레이걸스 야구단의 일원이었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한국가양주연구소에서도 다시 만났던 동생. 내가 그렇게 기억의 서랍을 열자, 사촌동생은 거의 특종을 전하듯 말했다. 슬기가 지금 자기 옆에 있는데, 같은 회사로 이직해 함께 밥을 먹고 산책하던 중, 전통주를 빚는 오빠 이야기가 나왔고 서로 내 이름을 동시에 꺼냈다는 것이었다. 사람의 세계는 때로 믿기 어려울 만큼 좁고도 정교했다.
슬기, 사촌동생 현민,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술자리를 가졌고, 이후 ‘텐데 Tende’라는 이름의 작은 모임까지 만들었다. 분기에 한 번쯤 함께 여행을 떠났고, 여행지가 어디로 정해지든 한 가지 규칙만은 늘 분명했다. 최소 한 곳 이상의 양조장을 들를 것. 현민이 시댁인 밀양에 가서도 그랬고, 약돌돼지고기로 이름난 문경에 가서도 그랬고, 현민의 남편이 운전대를 잡아준 강화도에서도 그랬다. 어떤 여행은 풍경을 보러 떠나지만, 우리의 여행은 사람의 손맛과 기다림이 만든 술을 확인하러 가는 길이 더 중요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셋의 인연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현민이가 다른 직장으로 옮긴 뒤에도 슬기와 둘이 만나기만 하면 전 직장 이야기를 술안주처럼 끝없이 풀어냈다. 나는 어느새 그 회사의 시스템과 구성원들의 닉네임, 그리고 바깥으로는 쉽게 새지 않을 법한 속사정까지 어렴풋이 이해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이야기들 속에서 유독 선한 인상으로 남는 인물이 한 명 있었는데, 슬기의 팀장인 ‘J팀장’이었다. 실제로 한국전통주 박람회나 부스 현장에서 몇 차례 통성명을 나누며 인사한 적도 있어, 내게도 낯설지 않은 인연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슬기가 연구소 수업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J팀장이 명주반 수업을 듣고 있었고, 슬기는 청강하러 왔다는 말과 함께였다. 1년 6개월 전에 신청해 거의 잊고 지냈던 수업을 이제야 연락받고 듣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J팀장 역시, 내 후배가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 소장님이 떠올랐다. 연초가 되었는데 왜 새배하러 오지 않느냐는 말을 슬기가 대신 전해 왔고, 나는 그 다음 주 연구소 수업 시간에 맞춰 찾아갔다.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 강의를 듣는데,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13년 전 들었던 수업이었는데도 그 시간은 낯설기보다 이상하리만치 익숙했다. 오래전에 스쳐 지나갔던 문장들과 개념은 마치 한 번도 사라진 적 없었다는 듯 또렷한 표정으로 귓가에 맴돌았다. 그때는 너무 당연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이야기들이 이제는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고, 소장님이 중간중간 던지던 특유의 유머도 조금도 녹슬지 않은 채 정확한 타이밍으로 웃음을 일으켰다. 익숙함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었다. 새롭게 덧붙여진 내용도 있었고, 예전에는 놓쳤던 결도 보였다. 기억의 구석에 묻혀 있던 정보들을 다시 손끝으로 더듬어 꺼내는 기분이 들었다.
수업이 끝난 뒤에는 슬기와 J팀장, 그러니까 재석이과 함께 뒤풀이를 했다. 밤 열 시가 넘어 다음 날 출근을 생각해야 하는 시간이었지만, 그래서인지 오히려 술은 더 빠르게 비워졌다. 짧은 시간 안에 생각보다 많은 잔이 오갔고, 취기가 무르익을 즈음 동갑내기였던 재석과 나는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헤어진 뒤, 소장님이 왜 본인은 뒤풀이에 끼워주지 않았느냐며 서운함을 내비쳤고, 나는 일주일 뒤 다시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연구소를 찾았다.
나는 소장님과 ‘소주’ 마시는 시간이 좋다. 막걸리나 다른 전통주를 앞에 두고 마주 앉으면 스승과 제자의 선에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런데 소주는 다르다. 술이 목을 타고 내려갈수록 위계의 윤곽은 조금씩 풀어진다. 그 순간만큼은 가르침을 준 사람과 배운 사람이 아니라, 먼저 조금 더 오래 세상을 건너온 사람과 그 뒤를 따라오며 삶의 결을 익혀가는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