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 오래 끓인 시간의 맛

남대문 <진주집>







첫 만남의 좌표는 2006년이었다. 내가 2005년 대학원에 입학했고, 이듬해 영선이는 신입생이자 우리 연구실 조교로 들어왔다. 우리는 같은 지도교수님 아래에서 공부했고, 자연스럽게 ‘연구실 남매’라는 이름으로 묶였다. 학문이라는 다소 건조한 세계 안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이 생겨나는데, 영선이와의 인연이 그랬다. 그녀는 언제나 차분한 태도로 사물을 오래 들여다보는 사람이었다. 서둘러 결론을 내리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서 세상을 통찰하는 힘이 있었고, 나는 그런 후배에게서 자주 배움을 얻었다. 뛰어난 선배는 아니었지만, 신기하게도 영선이는 나를 꽤 오래, 그리고 깊이 믿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졸업 후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취직을 하고, 생활의 무게를 견디고, 서로 다른 속도로 삶의 강을 건너면서도 가끔 안부를 주고받았다. 멀어지지 않은 이유는 자주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한 시절 같은 밀도의 불안과 열망을 함께 통과한 동지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더 흐른 뒤 영선이는 회사를 그만두고 결혼과 함께 유학길에 올랐다. 지금은 미국 로체스터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스피치 강의를 하며, 일반 청중을 대상으로 말하기 수업을 하는 크리에이터로도 활동하고 있다. 예전에 자신의 가능성을 세상에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 내게 조심스레 묻던 후배가, 이제는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언어를 건네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은 내게도 작은 감회를 남겼다. 삶은 늘 원하는대로 흐르지 않지만, 묵묵히 자기 목소리를 닦아온 사람은 결국 자기만의 울림에 닿는다는 것을 영선이를 보며 새삼 생각했다. 그녀는 매년 말 학기를 마치면 한 달 남짓 한국에 머물며 관련 업무를 본다. 그러다 시간이 생기면 잊지 않고 연락을 해온다.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는 늘 맛있는 곳에 데려가 달라는 말을 숙제처럼 던지는데, 나는 그 부탁만큼은 늘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값비싼 식탁보다 인간의 체온이 배어 있는 곳, 서울의 생활이 스며 있는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선이는 업무상 미팅이나 회식에서는 술을 자제하는 편이지만, 나를 만날 때면 선배와는 편하게 한잔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하는 영선이의 마음도 어쩐지 고마웠다.

올해도 연락이 왔다. 바쁜 일정 탓에 이번에는 그냥 스쳐 지나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밀린 일을 마치고 조금 여유가 생겼는지 새해가 조금 지난 뒤 약속을 잡았다. 그날 나는 회현동에서 전시를 볼 예정이었고, 영선이 역시 예전 회사가 있던 곳이라 남대문에서 만나자고 했다. 원래는 전시를 함께 보기로 했지만, 마감 시간을 잘못 알아 나만 먼저 보고 나오게 되었다. 남대문의 식당 후보들 가운데 그녀가 고른 곳은 70년 전통의 <진주집>이었다. 꼬리토막과 모듬수육이 유명한 집. 나는 즐겨찾기만 해두고 미처 가보지 못했던 곳이었고, 영선이에게는 직장 시절 자주 들르던 익숙한 장소였다. 회현동에서 남대문 쪽으로 내려오는 동안 그녀는 종종 걸음을 늦추며 풍경을 사진으로 담았다. 오래 몸담았던 도시의 한 귀퉁이를 다시 만나는 사람의 표정이 거기 있었다. 먼발치에서 보면 그는 서울을 음미하는 여행자 같았고, 가까이서 보면 시간을 더듬는 귀환자 같았다.


노포의 문을 미는 순간, 바깥의 계절은 문턱에 잠시 걸어두고 들어온 듯했다. 오래된 나무 의자와 세월의 윤기가 밴 테이블은 군더더기 없이 몸을 받아주었고, 김이 오르는 꼬리토막은 오래 묵은 기억을 다시 데워 식탁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모듬수육 접시에는 삶은 시간의 결이 차분히 얹혀 있었다. 부드럽게 풀어지는 고기 결 사이로 우리는 대학원 시절의 문장부터 다시 꺼내 읽듯 지난 시간을 더듬었다. 한때는 논문과 마감, 불확실한 진로와 서툰 자의식 속에서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주던 사이였다면, 이제는 소주잔을 천천히 채우고 비우는 속도로 서로의 현재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이야기는 대단한 결론을 향해 달리지 않았다. 대신 우리와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의 안부를 묻고, 빛이 바랜 관계의 이름들에 다시 채도를 입혔다. 선배와 후배라는 호칭은 여전했지만, 그것은 위계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같은 시간의 강을 건너온 이들이 서로를 확인하는 표지판에 가까웠다. 소주 한 잔은 지나온 날의 쓸쓸함을 조금 덜어냈고, 뜨거운 국물은 생활의 피로가 스민 말끝을 조용히 감싸 안았다. 삶이란 결국 누군가와 마주 앉아 서로의 오늘을 무사히 건네받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오래된 인연은 그 단순한 일을 가장 따뜻한 방식으로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우리는 남대문의 한 노포에서 다시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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