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 | 바늘 끝에서 다시 돌아온 청춘

홍대 <곱창전골>








충무로역 안에는 ‘오재미동’이라는 영상센터가 있다. 책을 고르고, 영상을 보고,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이 공간은 분주한 지하철 역사 안에서 호흡을 고르게 만드는 문화의 숨구멍 같다. 그런데 그 안의 히스토리 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상한 공백을 발견했다. 2003년 이전의 기록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이 공간의 전신은 충무로영상센터 ‘활력연구소’였다. 그리고 내 청춘의 한 부분도 분명 그 이름 아래 놓여 있었다.


제대 후의 나는 독립영화라는 세계를 막연한 동경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쳐 보고 싶은 열망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열망은 활력연구소에서 조금씩 모양을 갖추었다. 자원활동을 하며 그곳을 드나들었고, 그 조직에서 일하던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최소원 소장을 중심으로 최정미, 문덕주, 유정은, 오류미, 김완 같은 이름들은 이제는 오래전 명단처럼 보일지 몰라도, 내게는 여전히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로 남아 있다. 때로는 행사장에서, 때로는 사적인 인연의 가장자리에서 변영주, 김곡·김선, 윤성호 감독과도 옷깃을 스쳤다. 감독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거창한 선언보다 그런 우연한 접촉들 속에서 조금씩 자라났다.


그 시절 영상센터에서는 영화제를 기획하였다. 이름부터 범상치 않았던 ‘십만원영화제’였다. 완성된 거대 자본의 영화가 아니라, 적은 돈으로도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 완성도보다 실험성과 생활 속 창작의 기운을 더 귀하게 여기는 태도가 그 영화제 안에 있었다. 이 영화제는 덕주 누나를 중심으로 굴러갔다. 물론 나도 그 일의 가장자리쯤에는 발을 올리고 있었다. 그 세계는 영화제의 상영관 안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홍대의 클럽 문화와 이어졌고, 그 연결은 당시의 나를 또 다른 밤의 문장들로 이끌었다.

그 무렵 누나들을 따라 자주 갔던 클럽이 ‘꽃’과 ‘곱창전골’이었다. 신기한 것은, 이 두 이름이 지금도 홍대에서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는 점이다. 우선 분명히 해둘 것은, 곱창전골은 곱창전골을 파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름은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 농담은 오래 살아남아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신촌과 홍대 사이 기찻길 옆 작은 LP바에서 시작된 그 공간은, 업종을 묻는 말 앞에서 얼떨결에 “곱창전골집”이라고 답한 한마디로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이후 서교호텔 뒤편 후미진 골목으로 자리를 옮긴 2002년 무렵, 그곳은 이미 홍대의 밤을 상징하는 은밀한 성지가 되어 있었다. 2003년의 내 기억 속 곱창전골은, 지금의 표현을 빌리자면 힙스터들의 성지였지만, 그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젊음이 아직 유치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던 공간이었다. 80~90년대 가요가 흐르면 누구도 냉소하지 않았고, 모두가 기꺼이 떼창을 했으며, 어떤 밤은 춤이라기보다 집단적인 회상의 몸짓처럼 느껴졌다. DJ 출신 사장님이 지키는 그 공간은, 누군가의 청춘이 바늘 끝에서 다시 돌아가는 방 같았다.


최근 나는 선진이의 생일 모임을 계기로 오랜만에 그 곱창전골을 다시 찾았다. 어디로 갈지 함께 고르다가 그 이름 앞에서 멈춘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니었다. 선진이는 오랜만에 그 클럽에 가서 즐기고 싶다고 했다. 그 말 속에는 한때 그곳에 자주 드나들던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열망이 묻어 있었다. 매몰되어 있던 청춘의 한 조각이 갑자기 흙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순간 같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래전의 시간을 다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1차로 고깃집에서 저녁을 먹고, 소화를 핑계 삼아 가까운 곳에서 2차를 한 뒤, 마침내 클럽으로 향하는 언덕을 올랐다. 곱창전골은 저녁보다 자정 가까운 시간에 가야 제맛인 곳이라는 것을, 우리 몸은 이미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우리 일행은 다섯 명이었고, 무대 바로 앞의 큰 테이블을 안내받았다. 예전의 나는 안쪽에서 더 자주 놀았다. 그쪽은 낯선 사람들끼리도 어느 순간 한 편이 되어 춤추기 좋은 자리였다. 반면 무대 앞은 조금 더 정면으로 이 공간의 열기를 받아내야 하는 자리였다. 밤 10시의 분위기는 아직 잠겨 있었다. 음악은 흐르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흥은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11시가 가까워지자, 좌중 안에서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는 무리들이 생겼다. 누군가는 의자에서 일어나 리듬을 탔다. 오늘도 기차놀이로 마무리되는 밤이 되려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 순간, 그 근심은 어느새 들뜸으로 바뀌고 있었다.


곱창전골에서 잘 노는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크게 밀어붙이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남이 고른 노래 속에서도 자기 시절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잔을 부딪치다가도, 갑자기 흘러나온 오래된 가요 한 곡에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이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그곳은 술집이 아니라 집단의 기억이 잠시 살아나는 다락방이 된다. 선진이는 바로 그런 밤의 결을 아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그 흐름 속에 스며들었다. 잘 노는 사람은 흥을 과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간의 오래된 리듬과 자기 마음의 박자를 맞출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날 나는 다시 배웠다.






20260207_215439.jpg
20260207_215451.jpg
20260207_215453.jpg
20260207_215631.jpg
20260207_215720.jpg
20260207_220837.jpg
20260207_220851.jpg
20260207_220900.jpg
20260207_220917.jpg
20260207_221139.jpg
20260207_221311.jpg
20260207_221511.jpg
20260207_221520.jpg
20260207_221623.jpg
20260207_221713.jpg
20260207_221847.jpg
20260207_225107.jpg
20260207_234820.jpg
20260208_000108.jpg


매거진의 이전글서울 중구 |&nbsp;오래 끓인 시간의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