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에서 보낸 4박 6일 동안, 나는 매일 오승명을 만났다. 보통 만남은 그의 딸 선율이의 스케줄에 맞춰 정해졌다. 승명이가 베트남에 정착한 지 다섯 달 만에 맞는 첫 지인 방문이 내가 처음이라는 사실도, 그래서인지 그는 반가움과 책임감을 동시에 품고 나를 이 도시 속에 데리고 다녔다. 내게는 낯선 종류의 여행이었다. 승명이와의 관계가 어색한 게 아니라, 내가 늘 혼자서만 도시를 헤집고 다니는 쪽의 여행자였기 때문이다. 내 여행은 대개 발길이 이끄는 대로, 술기운과 호기심이 섞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군가의 생활 리듬과 호흡에 맞춰 도시를 건너게 되었다. 그 낯섦이 처음에는 약간 머쓱했지만, 곧 이상하리만큼 다정하게 느껴졌다.
첫날 승명이는 내 일정을 먼저 물으며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고르게 해줬다. 배려심 있는 유예였다. 그러나 둘째 날부터는 양상이 달라졌다. 전날 밤이면 그녀가 다음 날 기상 시간과 만남 시간을 정리해 통보했다. “오전 8시 반에 만나. 먼저 에그커피 먹자.” 그 문장은 짧았지만 하루의 윤곽을 명확하게 잡아줬다. 나는 그녀가 정해준 시간표에 순순히 몸을 실었다. 혼자 여행할 때의 나는 전날 과음으로 다음 날 오전을 통째로 지워버릴 때도 있었다. 누군가가 내 아침을 강제로라도 꺼내어 햇빛 아래 세워주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고마웠다. 자유란 믿을 만한 타인에게 하루의 방향을 잠시 맡길 때 더 선명해지기도 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셋째 날, 승명이는 선언하듯 말했다. “오빠, 오늘은 6끼 먹는 날이야.” 보통의 여행자라면 놀랄 말이겠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 여섯 끼를 선율이 픽업 전, 그러니까 오후 한두 시 사이에 모두 끝내자는 계획이었다. 물론 여섯 번의 식사가 모두 무거운 것은 아니었다. 쌀국수로 시작해 카페를 들르고, 다른 베트남 음식을 맛보고, 생과일주스로 입을 헹구고, 다시 한 접시의 무언가를 나누는 식이었다. 강약중강약처럼 리듬이 있었다. 배부름과 허기의 간격을 세심하게 조절하는, 생활인만이 짤 수 있는 동선이었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내가 오래 좋아해온 여행의 방식이기도 했다.
그렇게 여섯 군데를 돌고 승명이와 헤어지면, 내게는 또 다른 일정이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소화의 시간, 그리고 혼자 걷는 탐사의 시간이다. 호치민 시내를 도보로 가로지르며 유적지와 오래된 공간, 궁금했던 장소들을 찾아다녔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에게는 묘한 강박이 있다. 오늘 내게 할당한 여행지는 오늘 반드시 클리어해야 한다는,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스스로에게만 유독 엄격한 의무감. 열심히 걸어 배를 꺼뜨려야만 저녁의 약속도 받아낼 수 있었다. 도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먹은 것을 소화하는 일과도 닮아 있었다. 눈앞에 쌓이는 풍경과 감정, 냄새와 대화들을 천천히 몸 안에서 삭혀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어떤 저녁에는 승명이와 선율이가 함께했다. 선율이는 현지 음식보다 한식을 좋아해 외식할 때면 자연스레 한국 식당을 찾는다고 했다. 타오디엔에는 한인 거주자가 많아 그런 위로의 공간들이 예상보다 많았다. 여행 중의 한식당은 대개 ‘이 정도면 괜찮다’는 타협의 장소이기 마련인데, 승명이는 이 동네의 한식당은 다르다고 장담했다. 특히 순댓국은 한국과 완전히 같다고 했다. 나는 반신반의하며 순대국밥 한 그릇과 납세인증지가 붙은 한국 소주를 마주했다. 첫술을 뜨는 순간,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한국을 흉내 낸 맛이 아니라, 그냥 한국의 맛이었다. 미뢰 속 어딘가에 숨어 있던 귀국 본능이 벌떡 일어나 ‘생존’을 외치는 것 같았다.
주말이 되자 승명이의 남편도 합류했다. 이마트에서 인형뽑기를 하는데, 선율이만큼이나 어른 둘이 더 정신을 못 차리고 지폐를 기계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한참을 지켜보던 직원은 답답했는지 팁을 알려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결국 기계 문을 열어 손으로 인형의 자리를 옮기며 거의 떠먹여주다시피 했다.
현지에 사는 가족과 함께 도시를 훑는다는 것은 여행 정보가 힘없이, 그러나 따뜻하게 내 품으로 안기는 일이다. 내가 스스로 찾아 익힌 정보 위에 살아 있는 정보가 포개진다. 지도에는 없는 정보, 검색창이 끝내 가르쳐주지 못하는 생활의 숨결. 그런 것들을 품고 다시 도시를 걸으니, 짧은 여정인데도 호치민이 훨씬 크게 안겨왔다. 나는 그 도시를 관광한 것이 아니라 잠시 빌려 살았다는 기분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떠나는 마지막 날, 나는 석양까지 선물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