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 창비
-30p.
‘이웃’ 줄기 끝에 매달린 클로버 잎을 닮은 두 개의 동그라미가 돋아나 있는 단어.
클로버들이 담긴 투명하고 작은 물병.
‘잘 키우시게. 행운 열리면 나도 줘.’
-33p.
여름은 언제나 강렬한 감각으로 기억되는 계절이다. 찬란한 색깔들. 팽창하는 냄새들.
-35p.
과학실험실이 되길 원하지는 않는다.
-47p.
나는 나의 늙은 개와 나무들 아래에서 오래도록 서서 무성한 연둣빛과 진초록의 잎이 매달린 가지들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서로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소리를 듣곤 했다.
-52p.
영화(<사운드 오브 뮤직>)를 본 이후 그런 식으로 좋아하는 것들을 가만히 떠올려 보는 건, 혼자 있는 시간이 유난히 많았던 어린 시절의 내게도 슬픔이나 불안을 견디는 하나의 방법이 되었다.
-53p.
유리병 – 빛을 받는 순간 언제고 보석처럼 영롱히 반짝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129-130p,
어째서 우리는 슬퍼하는 사람 앞에서 수없이 많은 실언을 하고 빈 껍데기 같은 말만을 건네는 걸까?
사람들이 그토록 서투른 말들을 건네는 이유는 죽음에 대해서 말하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145p.
담벼락엔 붓글씨로 ‘넘치는 물건 여기에 두고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라고 쓴 하얀 종이가 붙어있었다.
-147p.
“<개를 위한 노래> (메리 올리버, 창비, 민승남 옮김) - 나는 자주 구름 속에서 퍼시의 형상을 보고 그건 나에게 한없는 축복이니까.” 봉봉이 떠난 이후 구름에서 봉봉을 찾는 건 나의 일이기도 했으니까.
-160p.
작가의 막내이모 – 그는 병원 안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 좋은 곳을 찾아내어 자신만의 산책 코스를 만들었고,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어떤 공간을 발견해 책을 가져다 놓고는 독서를 하고 글을 쓰는 자신만의 ‘서재’로 삼았다고 한다.
-212p.
모든 걸 시장의 논리로만 게산하는 세계에서 내가 만든 두 개의 도자기는 낭비와 비효율의 극치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내가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도자기들을 보며 얻는 기쁨은 어떻게 값을 매겨야 하는 걸까?
-214p.
꽃그늘 아래 오래 앉아 있었다.
-218p.
가짜 생일 파티
-223p.
우리는 노인을 타자로 여기기 때문에 ‘노화’, 즉 ‘나 자신’이며 동시에 스스로가 ‘타자’가 되는 이 낯선 상태를 기꺼이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렵다.
지금 나는 늙는 것이 헐벗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우리를 밑바닥으로 가라앉히는 거짓 욕망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과정이라는 걸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227p.
글을 다시 쓰기 위해 며칠 만에 언덕 위의 집에 돌아왔을 때 내가 목격한 것은 힘들게 심고 길렀던 식물들이 내가 돌보지 못한 사이 시들고 죽어 있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살아있는 것들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내가 멈춘 그 순간에 뜻밖의 선물처럼 주어진 생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