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송혜교가 나오는 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를 즐겨보고 있어요. (주변에 보는 사람이 저밖에 없는 것 같아서 조용히 티 안내고 보고 있었어요)
극 중에서 송혜교가 맡은 캐릭터는 '커리어우먼'입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집에 살면서 매일 화려한 옷과 높은 하이힐을 착용한 채 차로 출퇴근을 하고, 대형 패션기업의 디자인 팀장으로서 멋진 팀 리더십과 성공적인 업무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갑질하는 거래처에게 제대로 할 말도 다 합니다. 분명 미디어에서 만들어낸 '워너비 커리어우먼'의 상이죠.
얼마 전 대학 특강에 다녀왔는데요. 특강을 마친 후 어느 학생 A가 저에게 던진 말에 순간 '띠용~’했더랬죠.
"20대 여성들이 꿈꾸는 커리어우먼의 삶을 사시는 것 같아요"
민망한지라 '지금 저 자취방에 야근하러 가는데요'라고 했더니, 그것마저 '커리어우먼' 같다고 해요. 허허.
아무래도 저는 그들에게 '강연자'였기에, 그러니까 이들이 본 제 모습은 이게 다였으니까 더 그랬을 겁니다. A 대학생이 말한 '커리어우먼' 또한 미디어에서 만들어낸 이미지에 가까울거고요. 저 역시 대학생 시절만 해도 이미지의 환상이 제대로 짙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송혜교 기사와 A 대학생 말을 접한 시기가 비슷해서인지, 이 단어에 대한 의구심이 들더라고요. 인터넷 사전을 보니 '커리어우먼'이란 단어는 말 그대로 '직업을 가진 여성'인데, 주로 일에 대한 자신감과 능력을 강조하기 위해 쓰인다고 합니다.
오늘 이야기에서 '성별'은 중요하지 않고요. '직업을 가꾸어가는 사람'으로서의 현실판은 미디어 속 이미지와는 정반대편에 서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만하다가 실패하고, 남과 비교하며 자존감도 낮아져보고, 지나가는 말에 상처받고, 직접 증명해내기 전까지는 다 허세일 뿐이고 등등 다들 한번씩 겪어보잖아요. 한없이 찌질하고 쿨하지 않게 자신을 단련한 후에야 그 과정에서 조금씩 한발짝만큼만 더 내딛는 사람들이 현실적이고 인간미 있죠. 결코 드라마에서는 보여주지 않는 찌질한 과정이 없다면 개인의 유니크함도 공허할 뿐이고요. 미디어에서 만들어낸 커리어우먼의 환상과 자신을 비교하게 되면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만 들 겁니다. 미디어 속 이미지는 '결과'이고, 현실판 우리들은 '살아있는 과정'이예요. 달라요.
나아가 다행인 건, 지금 시대는 우리가 진짜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즉 '커리어를 가꾸어가는 사람'으로서의 진정한 커리어우먼과 커리어맨이 과거 또는 오늘날에 어떤 지독한 고민과 몰입을 헤쳐가고 있는지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루트가 많습니다. 작게는 SNS부터 유튜브, 북클럽, 책 등으로요. 더 다행인 건, 그들로 인해 '현재 나의 찌질한 고민과 실패는 정상이다'라는 위로도 받을 수 있어요. 상사와의 소통 방법이 고민이라면 이것에 도가 튼 온라인 멘토를 찾고, 번아웃이 고민이라면 이것에 도가 튼 온라인 멘토를 찾고… 위로 받고 멘토 삼을 수 있는 사람들 또한 정말 많고 제한이 없어요.
뭐 그렇다고 저에게 '커리어우먼'이라는 낯선 단어를 던져준 A 대학생의 환상을 굳이 빨리 깨게 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들이 기말고사 끝난 날 친구들끼리 소주를 마시며 회포를 푸는 것처럼, 이번 주 내내 누군가와 논쟁하고 잘 안 풀리는 일에 매달리며 자괴감 들었지만 금요일 저녁이니까 잠시 잊고 소주로 회포를 푸는 걸로 달래는 '현실판 워너비 커리어우먼'의 초상을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