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내가 대학시절에 교수님께 질문하러 갔던 어느 날 들었던 엉뚱한 대답이다. 그리고 나는 몇 년 뒤, 후배들을 앞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난 대학 4년 동안 이것 딱 한 가지 배웠다고.
그리고 오늘 이 글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좋은 자기 계발서는 많은 많은 질문을 던져주는 책이다."
내가 그 교수님을 만난 것은 3학년을 마치고 4학년을 앞둔 겨울방학이었다. 대회 출품을 위한 프로젝트를 방학을 이용해 진행했다. 자율주행을 위한 내비게이션을 만들어야 했다. 당시 나는 그 프로젝트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어떤 기술을 써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그 프로젝트를 소개해준 학과장 교수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학과장 교수님은 다른 교수님이 그 주제는 잘 아실 거라며 바통을 넘겼다.
해외 일정으로 바쁜 교수님과 어렵게 약속을 잡았다. 교수님 방에 들어갔더니 역시나 바빠 보이는 방이었다. 책이 책꽂이뿐만 아니라 책상이며 테이블이며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그런 책 위에는 또다시 논문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교수님은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오 그래, 윤성아 선생님이 뭘 도와줄까?"
나는 별다른 인사말 없이 본론을 바로 말했다.
"내비게이션을 만들어야 하는데 기술적으로 뭐가 필요한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학과장 교수님이 교수님께 가보면 잘 아실 것이라고 해서 찾아왔다."
교수님이 나에게 질문을 하셨다.
"건물마다 코드라는 번호가 있는 것은 아니?"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교수님은 잠깐 생각을 하셨다.
내 눈동자에는 기대가 어려있었다. 교수님은 입을 떼셨다.
"Good Answer(좋은 답)를 위해서는 Good Question(좋은 질문)을 해야 한단다. 선생님이 바로 대답을 해줄 수 있지만, 그렇다면 선생님이 아니야. 넌 네가 뭘 질문해야 할지도 준비를 안 해왔구나. 뭘 질문할지 고민을 해본 뒤에 다시 찾아올래?"
나는 황당했다. 뭐 이런 교수님이 다 있나 싶었다. '알면서도 안 알려 주겠다는 건 약 올리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 결국 힘 없이 "네..."라고 대답하고 그 방을 빠져나왔다. 대회에 제출했던 제안서는 선발되지 않았다. 대회라는 명분이 사라졌다. 난 그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그 교수님에게는 다시 질문하러 가지 않았다.
졸업을 하고 회사에 취직을 했다. 입사 전 부서 배치 면담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핵심인 부서로 날 보내 달라고 했다. 내가 입사했을 때 우리 팀은 새 제품을 한창 설계 중이었다. 매일 설계 회의가 있었고, 어떤 날은 새벽 1시까지 회의를 하기도 했다. 회의에서 주로 말하는 사람은 연구소장님과 핵심 연구원 한두 명이었다. 실장님과 팀장님은 누군가의 의견을 거들거나 어쩌다가 한 번씩 의견을 냈다. 당시 팀원 모두가 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팀원은 모두 10명이었다.
난 회의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아듣지 못했다. 우선 용어부터 알아야겠다 싶었다. 모르는 단어가 들리면 메모를 해 두었다. 회의가 끝나고 인터넷에 검색을 했다. 검색한 결과와 우리 팀에서 말하는 의미는 다른 경우가 많았다. 그다음부터는 인터넷 검색을 하고 선배 팀원에게 찾아가 물어봤다. 대부분의 선배 팀원에게 '나도 모른다'는 답변을 받았다. '나만 모르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 발언하는 이들만 회의 내용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그 사람들에게만 찾아가서 모르는 것을 물어봤다.
그 날 이후로 스스로와의 규칙을 한 가지 세웠다. '회의에서 손을 들고, 질문을 한 개만 하자'. 시간이 지나 이 규칙은 '하루에 최소한 질문 한 개씩 하자'로 바뀌었다.
6개월 정도 뒤에 나는 모든 회의에 어려움 없이 참여할 수 있었다. 1년 뒤에는 토론을 주도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 되었다.
회사를 나와 자주 가던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어느 가을날이었다. 발 밑에서 단풍잎이 바스락거렸다. 산책로의 사계절을 한 바퀴 돌았다. '좋은 질문을 위해서는 많은 질문이 필요하다.' 사계절을 돌아 이 답을 얻었다.
'베스트 셀프' 이 책은 워크북이다. 장을 넘길 때마다 질문이 쏟아진다. 그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 질문은 모두 나에 대한 질문이다. 나는 이런 반응을 했다.
'이건 정말 나에게 필요한 질문이야.'
'이 질문은 조금 진부하군.'
'이런 질문을 할 생각을 왜 못했지?'
'이건 대답하고 싶지 않아.'
'1년 뒤에도 다시 던져보면 좋을 질문이야.'
'이거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야?'
...
이 책으로 모임을 했다. 참가자들은 모임에 참여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한국인이라는 문화적 배경 아래에 공감하는 질문과 답변들이 있었다. 어떤 질문은 삶의 맥락에 따라 해석의 결이 달랐다. 누군가는 결론을 지었고 누군가는 답변을 미루었다.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았다. 결론은 다시 질문의 자리로 돌아갔다.
모임을 한 뒤로 4개월이 지났다. 모든 책이 그렇듯이 대부분의 내용들이 잊혔다. 당시 했던 질문들도 역시 잊혔다. 질문에 대답했던 나의 생각과 서로 부딪혀서 결론이 나지 않았던 질문들만 아직까지 남아있다. 그것은 내 일기장 속의 글로 남아있다. 오전 5시에 눈을 뜨는 행동, 러닝을 즐기게 된 행동, 그리고 이렇게 아침에 글을 쓰는 내용으로 살아있다.
자기 계발서를 읽는다고 정말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까? 그동안 읽었던 자기 계발서를 떠올려 보고, 나는 이내 아니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해야 한다'류의 내용들은 대개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이 난다고 하더라도 정말 실천에 옮기고 있는 내용은 얼마 되지 않았다. 왜 그럴까? 기본적으로 책은 남의 이야기이다. 책을 통해 간접경험을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간접경험이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은 직접 경험보다는 그 밀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책을 통한 간접경험의 영역을 직접 경험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질문이다. 질문이 책의 맥락과 달라도 상관없다. 질문의 수준이 낮아도 상관없다. 질문의 답을 찾지 못해도 괜찮다. 많은 질문 속에서 자연스럽게 좋은 질문이 나온다. 그리고 그 좋은 질문은 좋은 답을 찾도록 돕는다. 질문을 하고 답을 내리는 과정은 이렇게 삶의 내용으로 전이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재창조된 책의 내용은 내 몸에 짙게 배여 남는다.
책을 읽으며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된다면 어떤 책을 읽든지 상관이 없다. 하지만 기대하는 결과가 독자의 수준이나 태도에 따라 결정되는 책을 좋은 책이라고 추천할 수는 없다. 좋은 책에 대한 여러 기준 중의 한 가지는 '독자의 수준과 상관없이 일정 수준의 기대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자기 계발서는 주로 행동의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책이다. 그리고 앞의 이야기처럼 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은 나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유효한 요인이 된다. 즉, 좋은 자기 계발서란 '많은 질문을 던져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베스트 셀프' 이 책은 워크북이다. 장을 넘길 때마다 질문이 쏟아진다. 그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 질문은 모두 나에 대한 질문이다. 나는 이런 반응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