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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천협회 윤범사 Sep 22. 2019

모든 처음의 설렘에 대한 기억

달려온 심장은 이미 뛰고 있었다

1. 만남

평소 약속시간보다 먼저 도착하는 내가 하필 그날따라 시간이 임박해서 사당역 지하도를 뛰고 있는데, 먼저 온 그분에게 전화가 다. 겨울코트를 입고 구두를 신은 채 달려온 심장이 계단을 바삐 오르고 뛰다 카페 앞에서 문득 멈추었다. 다소곳이 두 손을 앞에 모아 가방을 꼭 쥐고 서있는 한 여성분을 스치반짝하는 계시에 걸음이 멈추어 서고 고개를 돌린 그 순간에.


2. 입맞춤

이야기를 하려고 술이 과하게 들어갔는지 이기지 못할 만큼 취하고 그동안 조심스러워 하지 못했던, 깊숙한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마주 기댄 어깨에 긴장이 풀린 채로 을지로 지하상가를 나란히 걸었다. 인적이 드문 주말 저녁의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용기를 불어넣은 뜨거운 입을 가만히 포개어 맞추고 벽에 기댄 등과 엉덩이를 꼭 쥐고 나서 무례한 건 아니었을까 조마조마했던 처음의 설렘.


3. 몸의 대화

세상 편한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며 맥주를 기울이다 동이 트기 전에 보내주겠다던 약속은 술을 깨려고 잠시 잠들었을 때에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곤히 잠든 여자친구가 된 이 옆에서 저려오는 팔베개를 빼지 못하고 전전긍긍한 채 잠이 오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은 신세계를 경험하며 행여 깰까 한 팔로 조심스럽게 청바지 허리띠를 끌러 내리고 꼬옥 끌어 안아 잠들었을 때 심장이 오히려 더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아침이 오고 잠이 깨고 치마 아래 허벅지가 맞닿았을 때 속옷을 사이로 대화를 나누듯 서로를 탐냈던 처음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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