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실종된 첫사랑을 찾아 나선 40대 싱글남에 대해 쓰고 있다던 그가 5년 만에 두 번째 소설로 돌아왔다. 사귄 지 200일을 맞아 선물한 '방콕'은 그러나 달달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고, 선물로 받자마자 소설 특유의 빠른 흡입력으로 단숨에 책을 읽어낸 여친으로부터 200일을 맞아 선물한 의도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거나 하다못해 해피하게 끝나는 엔딩도 아니니 연인과의 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한 소설은 아니라고 단언컨대 말할 수 있다. 이런저런 서평에서 '존엄'에 대한 소설이라고 평한 '방콕'은, 그러나 오히려 개인적으로 내밀한 상처에 새살 돋는 마데카솔 같은 답이 되어주었다. 다양한 인물들의 절망적인 사건이 얼키다가 대부분 죽음 아니면 비극으로 마치는 이야기를 읽으며, 엉망진창 같았던 지난 일이 바닥까지 갔던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과 손 내밀어 도움을 준 주변 분들을 떠올리며 새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세상이 어찌나 내편인가 싶게 삶이 아름답기만 한 사람에게도 문득 가혹한 사건은 얼마나 소리 없이 스윽 다가오는가. 그것이 비단 나로부터 비롯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에게서, 혹은 오해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어느 정도까지가 무심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한도인가. 소설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열심히 삶을 존중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일 잘하는 이주 노동자, 부도 위기에 처한 회사를 남편으로부터 이어받아 견실하게 일군 사장, 촉망받는 피아니스트, 경영수업을 착실히 받는 2세, 레스토랑에서 인정받는 착실한 알바, 군인 시절 모아놓은 돈으로 여생을 즐겁게 보내고 싶은 남자와 그를 사랑하는 여자. 이들이 지독하게 나쁜 일을 저지르게 되는 계기는, 악한 본성 같은 것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존엄, 사랑, 지켜야 할 것들의 우선순위 혹은 오해에서 비롯된다. 매출이 감소하는 회사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누군가의 존엄에 상처를 입히고, 복수의 칼끝이 다른 사람에게 향하고 뒤엉키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끼리 죽고 죽이는 상황에 처하는, 회복될 수 없는 결말로 치닫는 최악의 삶을 보여주며 소설은 끝이 난다. 책을 다 읽고서 가보지도 않은 방콕이 무서워졌고 편안히 PC 앞에 앉아 서평을 쓰고 있는 삶에 안도와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회복할 수 없는 일을 당했거나 저지른 삶에는 끝이 있지만, 극악한 사건에 휘말리고 살아남은 삶에는 어떻게 희망을 틔울 것인가 하는 질문을 가져본다. 어떻게 절망에서 헤어나올 것인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것 같은 삶도 '방콕' 같은 소설을 읽으며 안도할 수 있다면, 소설의 누구보다는 다행인, 아니 축복이 훨씬 많은 고마운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