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천협회 윤범사 Apr 22. 2022

나이지리아 출장기

라고스, 아부자

11년 전 아프리카 각국으로 파견된 동료 지전가의 소식으로 처음 접하며 심증만으로 공포감을 주었던 나이지리아를 직접 경험하게 된 값진 출장이었다. 지금까지도 전설 같은, 꼭 그래야만 했을까 싶게 파견 6개월 후 새하얘진 얼굴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동료는 나이지리아의 바깥공기란 일절 끊고 방안에서만 수행하듯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이후 나이지리아에 출장을 다녀온 다른 동료는, 굽굽한 날씨와 우울한 하늘이 압도적이라고도 했다. 이제부터 직접 경험한 나이지리아를 얘기하고 싶은데, 다년간의 인도 출장으로 다져진 경험치로도 덤덤할 수 없는 환경이 나이지리아에 있다.


라고스의 무탈라 모함하드 국제공항에 내려서는 회사에서 붙여준 프로토콜 덕에 미리 준비된 SUV 차량에 탑승하기까지 순탄했다. 도착비자를 받는 곳이 한쪽 구석 반층 아래 계단을 내려가 범죄인 인도 장소 같았고 비자가 나오기까지 십여분이 수십 분처럼 느껴졌다든지, 공항을 나와 차량이 대기하는 곳까지 비포장된 (정확히는 관리가 오래 안된 듯 포장이 깨지고 흙바닥이 드러난) 길에 공사장 바리케이트 같은 허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 소총을 멘 무장 경찰과 동승을 했다든지 하는 것들에 살짝 긴장한 정도.


2022년의 나이지리아, 특히 라고스 국제공항에서 빅토리아 아일랜드로 넘어가는 다리에서 우측으로 보이는 세상 험블한 마을의 풍경은 누가 고화질 드론 영상에 담아 역사에 두고두고 남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거리감이 있고 그리 높지 않은 눈높이에서 보이기 때문에 사실 마을이 보인다기보다 다소 평면적인 풍경이 보이는데, 글로라도 만족스럽게 묘사할 수 있기를. 목재 널빤지로 지은 가옥들이 두 눈 가득 지평선처럼 멀리에서부터 해안까지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데, 해안이라고는 했지만 바다 쪽으로 밀리고 밀려온 집들은 수상가옥의 형태로 연안을 채우고 있어 바다와 육지의 경계가 보이지 않는다. 널브러진 목재 쓰레기 더미가 한켠으로 밀려서 떠있고, 다리와 육지 사이 바다에는 조업을 하는지 이동수단인지 모를 조각배들이 듬성듬성 모터를 달고 저속의 물살을 가르거나 깨알같이 사람을 태우고 멈추어 있다. 어느 영화에서 본듯한 무법지대의 뿌연 연기가 멀리 지평선까지 띠를 이루고 있는 건 집집마다 뭔가를 때우고 있어서일까.


다리를 건너와도 잊혀지지 않는 수상가옥의 풍경은 도로 여기저기 누워있거나 몰려드는 무참한 몰골의 사람들이 아마 조각배를 타고 왔는가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조수석의 무장경찰을 흠칫 보고 알맞은 차량을 찾아 조악한 먹을거리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빽빽하게 들어앉은 봉고 크기의 노란색 미니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 이건 정말 말로 표현하기가 난감하다. 차량의 측면과 바닥은 녹슬어 떨어져 나가 있고, 차축은 지면과 6도쯤 후륜 쪽이 들린 채로 무서운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데 열린 문으로 신체 일부가 삐져나온 승객을 싣고 달린다.


경제 활동이 활발하고 사람이 몰려서 전 세계 최악의 교통정체란 불명예를 떠안은 라고스의 나이지리아 사람들은 우리나라 흥남부두 시절의 생존에 대한 절박함으로 편도 3시간의 출퇴근을 위해 새벽을 가르며 오늘을 산다.


나이지리아의 계획도시이자 수도, 아부자를 무사히 다녀오려고 숱한 액땜을 했는가 보다. 아침 6시까지 도착하려고 했으나 탑승 마감이 임박하도록 꼼짝없이 도로에 갇혀서, 6시 20분쯤에는 자동차 사이를 가르며 에어포트를 외치는 바이크를 타기로 한다. 아, 그전에 앞바퀴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 잠시 세워 살펴보기도 한 건 가볍게 별일 아닌 듯 넘어가고. 다행히 탑승 마감을 10분쯤 남겨두고 정체가 슬슬 풀리면서 바이크를 잡으러 내린 올루를 따라잡고 도로 태워 도착, 인산인해를 가르며 발권과 탑승.


아부자에서는 순조롭게 일을 마쳤다. 라고스로 돌아가는 항공편이 한 시간 이상 지연된 것도 그럴 수 있다. 순조롭지 않았다기보다 저녁 무렵이 되면서 기상천외한 기상조건이 되었다. 마치 사하라 사막에서 몰아쳐 오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모래바람이 거대한 산맥처럼 일어서더니 공항 탑승동의 어떤 시설을 강타한 듯 쿵 소리가 나 깜짝 놀랐다. 30분 지연이 한 시간이 되고 결국 비행기를 띄우고도 터뷸런스가 내내 지속되는 와중에 센스 있는 기장님은 다 예상하고 이륙했으니 호들갑 떨지 말고 즐기라는 멘트를 날리셨다. 클럽의 싸이키조명처럼 좌우로 번쩍거리는 천둥 번개가 비행기를 두 동강 낼 수도 있나 잠시 걱정하다가 잠이 들었고, 무사히 도착해서 환호를 지르는 승객들의 소리에 놀라 깼다. 사건의 연속이었지만 큰일 난 것은 없으니 즐기라는 말씀은 적절한 조언이었을지도. 아침에 공항까지 타고 온 차는 결국 돌아오는 우리를 데리러 공항으로 오는 길에 마침내 퍼졌다고 연락이 왔고, 아침 공항 가는 길에 퍼졌다면 오도가도 못했을 뻔했으니 하느님이 보우하심이 아니고 무엇이랴. 터뷸런스를 적절히 즐기며 날아오느라 비행시간도 1시간가량 늘었는데 퍼진 차를 대신해서 다른 차가 오는 바람에 픽업차량도 비슷한 시간에 맞게 공항으로 왔다. 무슨 규정인지 모르겠으나 바로 타면 안된다고 해서 공항 앞 도로를 1킬로쯤 SUV 뒤꽁무니를 따라 졸졸 걸어갔다.


초현대식의 카타르 공항 라운지에 앉아서 떠올려보니 나이지리아에서 겪은 일들이 한 세기 전의 영화 같다. 현금 갈취 금지 포스터 앞에서 돈을 요구하는 공항직원, 가방 뒤적여서 달러 나오면 잡아갈테니 이실직고하라는 직원,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흥건한 바닥.. 공존할 수 없는 동시대의 다른 두 세계가 내 안에서 조우하고 낯설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나는 모험과 꿈의 세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