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이었던 1993년의 어느 명절이었을 것이다. 달이 괴괴했던 성북구 지금 생각하면 일제 때 지어진 듯한 개량한옥 할머니댁이기도 작은 아버지댁이기도 했던 그 집 마당 한쪽에서 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셋째 고모부와 단둘이 있었다. 당시 어떤 곳인지 감도 없던 충청도에서 개업 한의사셨던 고모부는 아마 50대 초반이셨을 것이다. 살면서 좀처럼 잊히기는커녕 때때로 문득 하지만 매우 생생한 장면들이 있고 그 한 가지 기억이 그때인데, 정확히 기억나는 건 고모부의 질문이었다. "너 반에서 몇 등 하냐?" 반면에 내가 한 대답은 조금 덜 생생한데, 아마 5등 정도 한다고 했던 것 같고 이 장면이 생생한 이유는 고모부가 이어서 하신 말씀이 당시에 꽤나 깊이 각인되었던 것 같다. "너 반에서 5등 해서는 커서 아무것도 할 게 없다." 나는 나름 칭찬을 기대하고 했던 대답이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씀이었다. 막연하나마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고 그 때문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이듬해부터 공부를 열심히 했다.
어떻게 보면 그때 달 밝던 성북구 개량한옥 마당에서 나눈, 자주 뵌 적 없었던 어른과의 예상밖의 대화가 이후 무의식에라도 내게 엘리트주의 같은 사고방식을 저변에 깔았고 내 삶의 일정 부분을 지배했던 것 같다. 그분과는 정말 그때 딱 한 번 몇 마디 나누었을 뿐인데, 당시 할아버지 이하 집안에서 유일하게 전문직이셨던 고모부는 아마 조카가 당신을 이런 식으로 기억하고 있을 줄은 전혀 모르셨을 것이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나 지난 3월 15일 84세로 돌아가셨다고 엄마가 알려주셨다. 한 인생에 본인이 모르게도 이렇게 흔적을 남기신 충청도 고모부, 편안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