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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yee Oct 23. 2018

소설 ‘스토너’ 를 읽고

한국에서 돌아오면서 부리나케 서점에 들러 사려던 책들을 손에 들고 계산대로 향하던 중 우연히 연필 데생의 표지가 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들어 보는 작가의 장편소설 이어서 망설여졌지만 앞 페이지를 펼치자 쏟아져 내리는 문단의 찬사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이언 매큐언과 줄리언 반스의 평을 읽고 나는 망설임 없이 이 책을 계산대에 함께 올렸다.


스토너 (Stoner) 가 제목이고 작가는 존 윌리엄스이다.   영미권에서 스토너 라 함은 약쟁이 정도로 해석되나 이 책에서의 스토너는 단순히 주인공의 이름일 뿐이다.   그리고 존 윌리엄스는 그래미 나 아카데미 음악상을 휩쓸던 작곡가가 아닌 미국 미주리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며 몇 권의 소설을 발표한 후 1994년에 세상을 떠난 평범하다면 지극히 평범한 작가이다.


스토너는 1965년에 발표된 소설이었으나 그 당시 대중에게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묻히고 만다.   1994년 작가가 사망한 후에도 잊혀져 있던 이 소설은 2006년에 다시 리뷰 되면서 네덜란드를 기점으로 유럽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며 독자들의 호평이 쏟아진 작품이다.   반 고흐나 프란츠 카프카처럼 작가 사후에 센세이션을 일으킬 정도의 그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한평생 대학 강단에서 문학을 가르치며 쓴 소설에 대한 올바른 평을 책이 출간된 지 50년 후 에나마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책의 줄거리는 단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주인공이 가업을 잇는데 도움을 받기 위해 농경 대학에 진학하였으나 문학에 뜻을 품고 전과를 하여 박사학위까지 받고 교수가 되어 결혼하고 살다가 죽었다’이다.   이렇다 할 클라이맥스도 반전도 없거니와 책의 구성 역시 주인공의 탄생으로 시작하여 죽음으로 끝이 난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한 것은 이 책의 독자들은 확연하게 호불호가 갈릴 것이라는 것이다.     시작 부분의 몇 페이지 만을 읽고 책장을 덮어버리는 독자들이 상당수 존재할 수 있고 그 반면 긴 여운을 가지고 단숨에 읽어 내는 독자들이 있을 수 있다.   이야기 자체보다는 문체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편인 나에게는 한마디로 이 소설은 완벽한 작품이었다.


이야기는 미주리에서 시작하여 미주리에서 끝이 난다.   주인공인 윌리엄 스토너는 미주리 밖으로는 나가본 적도 꿈을 꾸어본 적도 없다.   바깥세상은 1차 대전과 2차대전의 소용돌이 속이었으나 소설은 오로지 주인공의 고독하고 진지한 내면 상태가 중심이다.     스토너의 삶이 그 자체로 고요한 전쟁이었다.    


그것은 블록버스터 영화의 홍수 속에 한 아이의 12년간의 성장 모습을 실제로 12년간 필름에 담아 낸 ‘보이후드’라는 영화와 닮아있다.   관객들은 한 아이의 보이후드를 엿보며 그 사람의 전체 인생을 상상하게 되었다.   소설 스토너에서 묻어나는 주인공의 내면의 모습을 글로 표현된 방법으로 읽으며 독자들은 각자의 느낌으로 그의 인생을 평하게 된다.   


과연 스토너는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 아니면 비극적인 인생이었는지 모든 것은 독자의 몫이 된다.   여기에 이 소설의 위대함이 엿보인다.   또한 작가 존 윌리엄스의 문체가 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소설을 비범하게 만든다.   인물과 성격, 그리고 내면 깊숙하게 깔려있는 정신 상태를 무게 있고 화려하게 표현해 낸다.   특별한 사건이나 반전 없이도 이 책을 끝까지 놓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들 모두는 각자  모습은 달라도 각자의 스토너를 품고 인생을 살고 있다.   절망적이고 비극적이지만 각자 진지하게 삶을 대한다.   우리가 겪는 위기나 갈등은 어떤 사건에 의해 해결되기보다는 대부분 시간이 지나 제풀에 식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과정엔 헤아리기 힘든 사유와 은유가 숨어 있다.   이것을 이야기로 펼쳐낸 작가의 천재적인 문학성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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