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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yee Oct 09. 2018

키키 키린

그녀의 죽음에 부쳐

흔히 명배우의 죽음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이 녹아들어있는 작품의 위대함 때문이다.   영화 ‘패왕별희’ 나 ‘해피투게더’는 시나리오나 명장면 이전에 이미 스며져 있는 장국영의 채취로 기억된다.   ‘죽은 시인의 사회’나 ‘굿모닝 베트남’ 역시 로빈 윌리암스를 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영화가 되어있다.   그들의 죽음이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여기 내가 좋아하는 일본 배우가 있고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키키 키린 씨.   그녀는 한국으로 말하면 김혜자나 윤소정 정도로 설명될 수 있는 일본의 국민 엄마 배우이다.   1943년 도쿄 출생인 그녀는 18세의 나이에 극단에 들어가 연기를 시작했고, 70년대는 주로 TV 배우로 활약하다가 80년대에 접어들며 시노다 나 이치가와 같은 유명 감독들과 함께 영화 작업을 시작했다.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2000년대에 들어서기 전 까지는 다른 일을 찾을 수 없고 그저 살기 위해 연기를 했다고 했다.   그 이후 영화는 그녀의 열정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키키 키린을 본격적으로 영화에서 접한 것은 2000년대 이후인 것 같다.   ‘걸어도 걸어도’, ‘앙, 단팥 인생 이야기’ 등이 나온 시기도 그때이고 이전에 TV에서 보던 단역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연기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마냥 따뜻한 엄마의 이미지와 냉정하면서도 강한 여인의 이미지를 오고 가는 그녀의 연기는 보는 이들의 몰입도를 한없이 높여 주었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에서는 장남의 기일에 모이는 하루 동안의 가족들의 이야기 안에서 어머니의 따뜻함과 애환과 슬픔과 분노를 그녀 특유의 연기와 수위로 기가 막히게 연기했다.   나병 (한센병) 환자들의 소외된 모습을 그린 ‘앙, 단팥 인생 이야기’에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그것이 팥이던 카나리아던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던 자유롭고 고귀하다는 심플한 메시지를 키키 키린이 아니면 표현하기 힘든 연기로 강하게 전달해 주었다.


2004년 그녀는 유방암 판정을 받는다.   키키 키린을 또렷하게 심어준 여러 편의 영화들은 모두 그녀가 투병생활을 하며 아픈 몸으로 연기를 했던 작품들이다.   달리 표현하면 그녀의 최고의 열정은 최악의 건강상태를 이끌고 이루어졌다.   Japan Times 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암이 온몸으로 전위되었고 나 스스로 건강했던 자신과 비교하면서 괴로워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아요.   이 끔찍한 현실에 맞서기보다 받아들이고 흐름에 맡기려 해요’라고 했다.   삶의 마지막 시간들을 병원에서 보내길 거부한 그녀는 온몸으로 퍼져가는 암세포들이 담긴 CT촬영 결과를 보면서도 담담하게 연기의 열정을 불태웠다.


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인간의 섬세한 심리를 담아내는 영화를 즐기는 편이라 홍상수나 왕가위와 더불어 고레에다를 높이 산다.   사실 키키 키린 하면 떠오르는 감독이 고레에다이지만 사실 그들의 첫 만남은 영화 ‘걸어도 걸어도’ 에서라고 한다.   그것도 다른 배우가 캐스팅되어있던 상황에서 키키 키린이 감독에게 사정하여 배역을 따냈다.   어쩌면 그녀는 그녀 삶의 마지막 여정을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 속에서 펼쳐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는 고레에다 영화의 고정 출연자로서 고레에다를 최고의 자리로 끌어올리는데 기여했다.


키키 키린 씨는 생전 많은 일반인들에게 친필 편지를 보낸 사실이 드러났다.   장래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젊은이나 학교에서의 집단 따돌림의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 영화 촬영 당시 만났던 한센병 환자나 심지어 광고 촬영 당시 방문했던 조그마한 마을에 까지 그녀의 편지가 전달되었다    그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심플했다.   사람은 각각 다르고 누구나 자기 몫의 삶을 충분히 가지고 태어난다 라는 지극히 당연한 철학이다.    작년 이맘때의 인터뷰에서 키키 키린 씨는 다음과 같이 밝힌 적이 있다.   “저는 배우를 하기 위해 인간으로서 사는 것이 아니고, 인간으로 살기 위한 한 형태로서의 배우라는 직업으로 여러분들과 만날 수 있었다는 감각이 있기에 여러분이 제 스승입니다.”   


죽음이란 어쩌면 사람들 속에서 동시에 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 속에서  죽은 자를 계속 살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죽을 것 인가에 어떻게 살 것 인가의 해답이 숨어있다.   고레에다 감독이 그동안 전달하고 싶었던 가족영화의 집대성으로 보이는 ‘어느 가족’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안았다.   ‘어느 가족’은 키키 키린의 명품 연기가 최고조로 더해진 그녀의 유작이 되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그녀는 마지막 대사를 대본에 없는 어렴풋한 입 모양으로 표현했다.


  다들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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