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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yee Aug 12. 2018

I was born Blind

암흑에서 만드는 노래

갑자기 결정된 한국방문은 여러모로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가게 일을 대신 메꿀 아내, 아이들의 존재와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아버지, 그리고 나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어머니와의 만남을 생각하며 착잡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내에 올랐다.  
여행길에 읽으려고 구입해 전화기에 넣어둔 책들이 있었지만 흔들리는 기내에서는 조그마한 활자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좌석 앞 스크린을 이리저리 눌러 보다가 TV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사진 한 장에 시선이 멈추었다.   "Gurrumul"이라는 타이틀의 이 프로그램은 오른손 잡이 기타를 거꾸로 잡고 있는 사람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었다.   생소한 이름과 얼굴이었지만 평소 뮤지션들의 다큐멘터리에 흥미가 많은 나는 플레이 버튼을 클릭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8-YMpYbRqY

Geoffrey Gurrumul Yunupingu 가 그의 정식 이름이고 호주 원주민 출신의 뮤지션이다.    여러 악기를 다루는 그는 드럼과 피아노, 그리고 오른손 잡이용 기타를 왼손잡이 모양으로 잡고 연주한다.   
그리고 그는 선천적인 맹인이었다
점자도 배우지 않았고, 맹인 지팡이를 쓸 줄도 몰랐으며 물론 안내견도 곁에 없었다.  그가 네 살 때 쥐어진 장난감 아코디언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고 그 이후 여러 악기를 자신이 직접 습득해 나가는 천재성이 발휘되었다.  
맹인가수하면 스티비 원더나 레이 찰스, 안드레아 보첼리, 와 이용복 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병으로 인해 시력을 잃었다.  하지만 Gurrumul 은 시력이 없이 태어났다.  
내가 이 프로그램에 빠져든 이유는 '맹인임에도 불구하고...'라던가 '기타를 거꾸로 연주하는 신기함...' 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그에게서 나오는 투명하고도 신비하고 깨끗한 소리였다.   물론 내 헤드폰이 기내의 소음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하여 아쉬웠지만 내 가슴을 울리는 데는 충분한 음색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그는 나름 성공적인 음악 커리어를 가지고 있어 호주에서 주어지는 갖가지 음악 관련 상들을 수상했고 레코드 판매도 성공적 있었다는 디스코그래피가 이어졌다.  하지만 나를 매료시킨 건 그의 성공이 아니라 그가 표현하는 소리 그 자체였다.   그의 노래가 한 소절 흘러나왔을 때 난 이미 호주 어딘가의 척박한 땅에서 흙과 돌을 만지는 그의 조상들을 만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표현하는 음악은 해변에 앉아 파도와 수평선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고요한 부족의 저녁 한때 그 자체였다.
우리는 눈으로 귀로 머리로 음악을 접하고 형상화한다.    이 지구상에 인간으로 태어나 우리가 명작이라고 일컸는 수많은 작품들을 남긴 음악가들의 모습들을 학습해 왔다.   과연 Gurrumul 은 어떤 체계로 음악을 접했을까?   누군가 그에게 모차르트를 들려주고 비틀스를 연주해 주었을까?   시각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암흑의 세상을 향해 그가 보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형상을 소리로 그려 넣었으리라.  
보지 못하는 Gurrumul 의 공연영상을 보고 있는 내가 조금은 쑥스러워 눈을 감았다.  특히 그가 그의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며 부르는 "Bapa"라는 노래를 들으며 난 다른 승객들의 눈치를 보며 눈물을 닦을 수밖에 없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KC-Jd7KN64


그 자신 46세의 젊은 나이에 병사하여 더 이상 그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는 없다.   다큐멘터리 중간쯤에서 스팅과 함께 Every breath you take를 공연하는 모습이 인상적 이었다.  Oh can’t you see? 하며 못 보는 사람이 보이는 우리에게 전하는 노랫말이 흐뭇함을 자아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8B8GQFbEoM

I was born blind and I don’t know why.  God knows why because he love me so....

아무튼 순식간에 그의 팬이 된 나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앨범을 iTunes에서 구입해 넣고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공항버스 안 내내 음미하는 호강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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