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설계도면을 닮은 작가의 플롯
플롯이라는 설계도
건축을 한다는 건 하나의 세계관을 완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평소 창작 관련 강연을 가게 되면 빼놓지 않고 하는 가장 중요한 비교 개념이다.
건축을 위해서는 먼저 클라이언트와 만나야 한다. 집을 짓기 위해 건축가를 찾는 것은 자신만의 살고 싶은 집이 있기 때문이다. 의뢰인이 어떤 집을 원하는지를 알아야 그에 걸맞은 공간을 만들 수 있기에 수 차례 미팅을 하며 의견을 조율한다. 이 시간은 충분히 듣는 시간이다. 그리고 듣는다는 것은 공감하기로 작정했다는 태도이다. 이 작업이 스토리를 잡는 큰 틀이라면 그 스토리를 본격적으로 쓸 수 있는 플롯을 만드는 것은 설계도를 그리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설계도를 그리지 않고 어림잡아 목공작업을 하기 시작하면 길이나 폭이 맞지 않아 결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 설계도는 아주 정밀하게 그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당장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해도 머지않아 집에 균열이 가거나 곰팡이가 생기고 천장이 내려앉는 등 붕괴 위험에 빠지게 된다.
어린이 작가들이 마주하는 설계도는 철저하게 이야기 구성의 다섯 단계를 따른다.
너무 어려서부터 틀에 가두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뭐,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가 거듭할수록 이 큰 틀을 신뢰하게 되었다.
지나친 풍요와 자유는 오히려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시야에 들어오는 만큼의 울타리를 만들어 놓으면 그 안에서 가능한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울타리라는 조건이 생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건이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그렇다면 이야기 구성 다섯 단계 속 핵심 조건을 알아보자.
우선 발단은 이야기의 시작을 의미한다. 키워드는 '미션'이다.
자연스럽게 등장인물들을 소개하고 어떤 배경에서 이야기가 펼쳐질지 알려준다. 그리고 중요한 핵심은 앞으로 작가가 주인공에게 어떤 미션을 줄지도 알려주는 단계이다. 이때 비로소 주인공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전개는 말 그대로 사건을 펼치는 단계다. '전개도'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주 작은 사건이부터 하나하나 뻗어 나가는데 전개의 핵심은 '갈등'이다. 갈등의 대상이 자기 자신이든 상대가 있든 사고상황이든 어떤 것이든 이 갈등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점점 눈덩이처럼 커지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백방으로 노력하겠지만 결국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고 이 단계가 바로 위기가 된다. 위기의 키워드는 '절망'이다. 소망이 끊어졌다고 표현하는데 스스로는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상황에 이르는 것이다. 이때 주인공을 다시 일으켜 세울만한 것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각성을 도울 조력자나 도덕적 신념이 절정에 이르게 하는 아주 훌륭한 도구가 된다. 절정의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각성'이고 주인공은 각성을 전후로 완전 다른 모습이 되어 휘몰아치게 사건들을 헤쳐나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말에 이르느데 이때가 되면 처음 발단에서 작가가 던졌던 미션은 완료상태가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주인공에게 모든 결말은 성장이 따른다는 의미에서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때!
라솔서재 아이들끼리 종종 하는 게임이 있다.
'바로 그때!'
이야기를 초반에 설계할 때 잘 풀리지 않으면 '바로 그때'를 외치면서 경우의 수를 10가지 생각해 보는 거다.
그럼 그중에서 가장 흥미롭고 긴장감 있는 사건을 선택해서 이어 나간다. 아교 역할을 하는 이 마법 같은 말은 시간과 공간을 제한하는 데서 가능한 것들을 꼽아 보도록 유도한다. 범위를 축소하면서 뇌가 더 집중하도록 힘을 주는 방법이다. 이 게임은 주로 위기에서 쓰게 되는데 발단과 전개에서 차분하게 쌓아 온 설정들을 바탕으로 이런저런 좌절의 상황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처럼 다섯 단계 구조를 설계하는 아이들은 책을 읽을 때도 이야기의 구조가 보인다. 글을 쓰는 동안은 비록 허우적거리면서 쓰지만 다른 작가들이 쓴 글을 보면 훈수를 둘 눈이 생긴다는 뜻이다.
가끔씩 아이들이 이 책은 위기가 약하다는 둥 딱히 사건이 없는 것 같다는 둥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코웃음이 나온다. 귀엽기도 대견하기도 한 탓이다. 아는 만큼 눈에 보인다고 했던가? 진짜 딱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라솔서재 아이들은 쓴 만큼 볼 수 있는 눈을 갖었다. 그렇게 비로소, 이야기의 구조가 보이는 것이다.